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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겨울은다시돌아올것이다

 

By. 꾸냠
 

 


 겨울의설산은적막하다.

 시들어진생명의죽은빛깔틈틈으로고개를기웃거리는것은이쪽세상에도저쪽세상에도포함되지못한어중간한것들뿐이었다. 종래에는그모습을완전히감추어어딘가의틈바구니에서아득바득살아가게될- 하지만아직까지는산의주인노릇을하고있는존재들. 산등성이근처민가부터나무수풀과동굴깊은곳, 물가와골짜기틈틈에이르기까지가그들, 요괴들의터전이었다.

 

 드물게찾아온폭설에눈으로쫓을수있는지면이어디까지고백색으로만가득채워져, 온세상이푸른하늘과하얀땅으로만덮인 날-

 굶주림과추위로부터근근이버텨오다더이상은안되겠다싶어겨우내땔감과먹을거리를찾아겨울산을오른사내의눈에, 하얀언덕위로짧게나부끼는검은머리카락에연분홍빛으로희미하게물든소매끝이가녀린, 눈보다도새하얀기모노를걸친여인이들어온다. 따라오라는듯조용히흔드는손짓에넋을놓고방향을틀어소복이쌓인눈길위로다붓이찍힌발자욱을이정표삼아이리저리발걸음을옮기면-  

 

 이미사내의운명이결정된것이나다름없다.

 

 한번홀리기시작하면어느새자신이쫓고있던발자국이흔적도없이사라진것도, 눈앞의 '여인'이라믿던생명체가미끄러지듯험한산길을향하고있는것도자각하지못했다. 그렇게천천히힘을빼놓으며잔재주로작은눈보라를일으켜, 시야를차단하고두다리를얼어붙이면- 평범한인간으로서는당해낼재간이없었다.

 

 그렇게서서히얼어붙는인간의몸뚱아리에서영혼만을취하는것이, 토도마츠의 '사냥'이었다.

요괴들중에서도꽤나요령좋게제몫을챙기는것으로정평이나있는그는, 덕분에산을찾아오는이가적은겨울한철장사로도배를곯는일따윈없었다.

 

 

 

 

 

  "식은죽먹기라니까~"

 

 커다란바위위에걸터앉아두다리를휘휘저으며토도마츠가콧노래를흥얼거렸다. 사냥감으로부터전리품삼아뺏아온헝겊주머리를열어탈탈털어보았지만, 인간들이사용하는금붙이쪼가리외에별다른수확이없었다. 예상밖의시시함에조금기운이빠진그는, 주머니를등뒤로대충휙던져버리고는생각에잠겼다.

 

 삐-

 

  '곧겨울이끝난단말이지'

 

 겨울의끝자락, 폭설로인해어느정도유예기간을가진셈이었지만그래봐야몇주내로겨울은끝날것이다.

 

 삐이-

 

  '봄까지는그렇다쳐도, 여름에지낼곳을미리찾아두지않으면...'

 

 삐이익-

 

  '지난해까지머물던곳이최근엔영기온이올라가서안락하지가않으니까-'

 

 삐이이이익-

 

  "아아아아-! 뭐야! 뭐냐고! 모처럼진지한고민을하고있는데-!"

 

 숲안쪽에서들려오는, 짐승의소리라기엔가냘프고새소리라기엔탁한정체모를소리에토도마츠가신경질적으로걸터앉은바위에서내려왔다. 

 

 삐이이-이익

 

  "아아아- 가고있으니까조용히좀해봐!!"

 

 토도마츠가볼을잔뜩부풀리며소리를높였다.

 어느쪽이냐하면그는인간만을먹이감으로삼는종(種)으로, 산짐승에겐꽤나우호적인편이었다.

 

  '아마..또덫이겠지'

 

 겨울에는쌓인눈아래에놓인것을미처보지못하고, 조악한덫에발목을물리는짐승들이더러있었다.

 아마지금들려오는울음소리도아마그런녀석의것이겠거니하고, 토도마츠는숲안쪽으로향했다.

 

 조금걷다보니지치기라도한것인지삐익삐익거리는소리가잦아들어, 근성없는녀석이네- 하고, 토도마츠는생각했다. 그러고도한참을더걸어들어가니토도마츠조차지금껏본적이없는비교적널따란연못이보였다. 

 그리고연못바로옆쪽, 질무렵의짙은개나리꽃색의털에목과가슴주변으로는몽실거리는하얀털을두른솜털뭉치같은녀석이흙바닥에배를깔고는늘어져있는것이보였다. 언뜻보기에덫에걸린것같진않았고, 덫이놓일만한장소도아니었다.

 

  "저기~ 아까부터삑삑하고울어대던게너지?"

 

 솜털뭉치옆으로다가가쭈그려앉은토도마츠가짐승에게말을건넸다.

 

  "....."

 

 대답이없다.

 눈대중으론조금큰고양이같은느낌이드는녀석이었다.

 여튼이곳에그냥두기엔얼어죽을것같았다.

 토도마츠는고민하다, 모처럼의측은지심을발휘해일단다른곳으로옮기고보자는생각에힘없이늘어진털뭉치의양겨드랑이사이로손을넣었다. 

 

  '어라? 몸이엄청찬데?'

 

 혹시벌써얼어죽은것이아닌가싶어내심걱정을하며훌쩍-  들어올려보려했지만, 지면에서조금떨어지기도전에무언가에걸 리는느낌이들었다. 그리고-

 

  "아파! 아프다!"

  "으으아아악-!"

 

 난데없이들려온음성에, 토도마츠는놀라그대로손을놓아버렸다. 목소리의주인으로예상되는짐승은고양이같아보이는외형에도불구하고낙법따위없이, 고대로철푸덕하고는잔뜩얼어붙어차가운지면에이마를들이받았다.

 

  "아파! 아파!"

 

 발갛게부어오르는이마를부여잡고는데굴데굴구르는털뭉치는, 몸은분명짐승이나얼굴만은인간의것을하고있었다.

 

  "뭐야....짐승이아니라요괴였어?"

 

 그러고는다시한번자세히들여다보니, 털뭉치의꼬리가얼어붙은연못가에끼어있었다. 연못에꼬리만담그고는잠이라도자다가, 그대로얼어붙어끼어버린모양이었다.

 

  '바보아냐...?'

 

 보아하니멀쩡히인간의언어도구사할수있는것같은데, 지능수준이상당히낮은녀석인듯했다.

 

  "야야! 가만히있어봐.."

 

 토도마츠가근처에놓인돌조각을집어들며말을건넸다.

 얼리는것이라며나모를까, 녹이는건능력밖의일이었다. 그냥평범하게도구를사용해빼내주는수밖에...

 

  "오! 나를연못에서빼내주는건가! 고맙군!"

  "그래~ 조금만기다려보라구.."

 

 쪼끄만것이말투가꽤나건방지네- 토도마츠가생각하며, 꼬리주변을중심으로얼음을깨뜨려나갔다.

 머지않아생각보다간단히, 얼마시간을들이지않고도털뭉치의꼬리를빼낼수있었다.

 

  "자~ 이제움직일수있을거야"

  "오우!"

 

 토도마츠의손놀림을신기한양동그란눈으로바라보던녀석은, 자유의몸이되자신이났는지폴짝거리며토도마츠의주변을빙 글빙글돌았다.

 

  "며칠전부터계속여기에서자유를빼앗긴채고독한시간을보내고있었다! 자유를찾아주다니고맙군, 인간. 이몸은이호수를관장하는미즈토라(水虎)다! 소원이있다면무엇이든들어주지!"

 

 꼬리를살랑거리며자신을올려다보는모습이퍽이나귀엽다고, 토도마츠는생각했다. 이렇게나작은게호랑이라니....

 하지만연못과호수를구분하지못하는건- 아니아까분명제입으로연못이라하지않았더가? 여튼, 그걸차치하고서라도, 인간과요괴조차구분하지못하다니- 절망에가까운수준의지능이잖아. 

 게다가...

 

  "있잖아, 내가알기론미즈토라는저언~혀너처럼생기지않았거든? 너무추워서정신이나간거같은데, 진짜이름은뭐야?"

  "나는미즈토라다!"

  "아하하, 그래-, 자기가관리하는물가에꼬리가끼어서짐승흉내나내며도움을구하는요괴이야긴들어본적이없는데말이지..."

  "그..그건나의실수다! 누구든실수할때는있는법이라고!"

  

 자신을무시한채몸을일으켜왔던곳으로다시발걸음을옮겨성큼성큼걸어가는토도마츠를잰걸음으로졸랑졸랑쫓아오며, 자신을미즈토라라밝힌호랑이가조잘거렸다.

 

  "어찌됐든감사의마음을표하고싶다! 필요한게있다면말해보라고, 인-"

  "오케이! 소원은, 내가널구해줬으니너도기회가된다면날구해줘. 그걸로됐지?"

 

 토도마츠가갑자기뒤로돌아호랑이를번쩍들어올리며말했다.

 

  "그리고! 난인간이아니거든! 난유키-"

 

  "앗, 이게누구야! 유키호모쨩!"

 

 호랑이에게한차례설교를늘어놓으려는찰나, 머리위로불쾌한음성이들려왔다. 

 이숲에서최고로만나고싶지않은요괴, 구미호.

 

  "아~아, 여기가여우들구역인건몰랐네. 바로갈테니말걸지말아줄래?"

  "에이~ 왜그렇게차갑게구남? 옆엔뭐야, 애완동물? 제법귀여운애로데리고다니잖아유키쨩~"

  "난애완동물이아니다! 이몸은이산의물을관ㅈ- 읍!"

 

 토도마츠가재빨리호랑이의입을틀어막았다.

 여기서더나불거리게했다간참어울리는한쌍이라며웃음거리가될것이뻔했다.

 

  "됐고! 볼일없으면난가볼테니까~ 볼일보세요여우씨~"

  "아아, 또보자고, 유키짱~"

 

 호랑이를품에껴안은채빠른걸음으로숲을빠져나오려니등뒤에서킥킥거리는비웃음소리가들려오는듯했다.

 

 인간들이저들끼리정해둔각종법전만큼은아니었지만, 요괴들사이에도나름의서열과암묵적인룰이있었다.

 같은요물이라해도신에가까운부류가있는가하면, 미물에불과한녀석들이있는데- 이는얼마나 '완성된' 형체를가질수있느냐에따라달라지기도했지만, 얼마나 '제약없이' 움직일수있느냐에따라서도결정되곤했다.

 

 - 가령, 

 대부분의활동반경이겨울에한정되는유키온나(雪女) 따위는, 하고있는모습에비해언제까지고하급요괴취급을벗어날수없는변변찮은존재에불과했던것이다.

 

 

 

 

 

  "사실은여우도, 용이나백호- 하다못해텐구라도있으면아무것도아닌녀석들인데..."

 

 여우의영역이라생각되는곳에서한참을벗어나, 쭈그려앉은토도마츠가호랑이를잔뜩껴안으며나즈막히중얼거렸다.

 

  "유키, 숨이막힌다만...."

  "누가유키야!"

  "그..그치만, 아까유키라고-"

  "그건말이잘린거잖아!"

  "이..일단수..숨이.."

  "아.."

 

 그제야토도마츠가화들짝놀라양팔의힘을풀었다. 아까와는다르게가뿐히땅에착지한호랑이가, 토도마츠주변을빙빙돌며몸을부볐다.

 

  "어찌됐든소원은접수했다고! 유키의몸은이몸이지켜주지"

 

 얜틀림없이하급요괴일거야- 

 

  "그래, 고마워..."

 

 토도마츠가적당히받아치며등뒤로굵게자란노송에몸을기대었다.

 

  "하지만난유키가아냐...유키온나, 설녀. 들어봤지?"

  "아니, 잘모른다만"

  "에, 진짜로-?"

 

 미간에잔뜩힘을주고는자신만만한표정으로, 짐짓해맑은말투로천연덕스럽게받아치는것을보니자신을놀리는것같지는않 았다.  토도마츠가한숨을푹내쉬고는말을이었다.

 

  "겨울에만활동하는요괴, 인간을꾀어내서영혼을빼가는게취미이자특기, 그리고생존방법! 인간들사이에선엄청난미인으로통한다구~"

  "헤에...

- 아까그녀석이말하던건뭐지?"

 

 호랑이가토도마츠쪽으로몸을바짝붙여앉으며물어왔다.

 

  "음~ 그건말이지~"

 

 당겨앉은호랑이의조그만머리통을쓰다듬으며토도마츠가말을이었다.

  

  "내가유키'온나'가아니라서, 일려나"

  "무슨말인지잘모르겠군! 아까는분명유키온나라고했잖아?"

  "으으으으으음....그러게~ 왜일까, 하하"

  "넌유키온나가아닌건가?"

  "아니, 맞아, 그냥...다른녀석들이랑은좀, 다르니까. 뭐여우는원래남골려먹는데만일생을바치는녀석들이니까~ 한심하게말이지, 그런걸로집요하게놀려대는거라고."

 

  거기까지말하고는토도마츠는호랑이를번쩍들어무릎위로얹었다. 녀석은아까부터별다른반항도없이얌전했다. 무슨종류의요괴인지는모르겠어도, 시원한몸뚱아리를안고있으니기분이좋았다.

 

  "여우들중에서도아까그녀석이제일싫어. 맨날친한척한다니까? 내가특별히뭘한것도아닌데말야. 그냥날때부터이런걸가지고계속이죽거리고....게다가내진명(眞名) 알고있는주제에, 한번도부르는꼴을못봤다고-"

  "오! 나도알고싶군! 너의진짜이름-"

  "안알려줄거거든~ 아까그녀석이후로는, 아무한테도안알려줘! 그리고원래도요괴들사이에서진짜이름을나눈다는거, 함부로하는거아니니까...이름을나눈대상이랑은좋은인연이든나쁜인연이든평생을이어진채지내게되는거니까. 너도알아두는게좋을거야꼬맹아-"

  "나는꼬마가아니다!"

 

 호랑이가토도마츠의무릎위에서폴짝뛰어내려방방거리며골을냈다.

 

 - 푸드드

 

 그리고그머리위로, 꾸벅꾸벅조는것마냥휘어지던노송의나뭇가지가무게를견디지못하고는결국, 호랑이의머리위로쌓인 눈을털어내었다. 호랑이는얼른고개를휘저어눈을털어냈지만, 몽실몽실하게가슴을덮고있는하얀털위로쌓인눈이그대로남아우스운모양새가되었다.

 

  "아하하하, 뭐야너, 엄청웃겨-

 그나저나, 그래서넌진짜로어디서온거야? 미즈토라, 아니잖아"

 

 꼬마호랑이의바보같은몸짓에토도마츠가웃음을터뜨리며물었다.

 토도마츠의말에호랑이는두어번눈을꿈뻑이다입을열었다.

 

  "사실은....모르겠다."

  "에~ 자기가누군지모르겠어?"

  "하지만계속물가에있었고, 아마도틀림없이미즈토라일것이다! 토라(虎)니까!"

  "흐~음.."

 

 득의양양하게재차자기소개를해오는호랑이를앞에두고, 토도마츠가턱을괴고는잠시고민했다. 하지만역시아무리생각해봐도, 이근방은커녕태어나서본일이없는녀석인데....새로운종이려나?

 

  "아무래도너, 기억을잃은거같은데...혼자서는아무것도못할것같고- 기억을찾을때까지좀도와줄까? 특별히말야"

  "정말인가! 기쁘군! 유키온나는정말친절하군!"

 

 작은호랑이는겨울이끝날때까지의심심풀이용으론썩나쁘지않을것같았다. 특히몸이따뜻한진짜짐승이라면질색이지만, 녀석은물과관련된종이맞긴한지꼭끌어안아도자신의냉기를해치는일이없으니애완동물삼아데리고있기엔안성맞춤이었다.

 

  "그렇다면혹시, 부탁을하나해도될까?"

  "들어줄수있는거라면-? 뭔데?"

 

 하여간쪼끄만게이상한말투를쓴다니까, 토도마츠가생각하며가볍게되물었다.

 

  "배가고프다만...뭔가먹을만한게없을까"  

  "-아..."

 

 거기까진미처생각못했는데-

 

  "그러고보니, 넌뭘먹고살아?"

 

 혹시라도자신과마찬가지로인간의영혼을취하는녀석이라면, 안타깝게도함께할수없었다. 인간이드문겨울, 멋이감을공유한다는건있을수없는일이니까.

 

  "아무거나...짐승이나나무열매, 풀따위도먹을수있다! 하지만역시기왕이면고기였으면하는군"

  "헤에- 인간은안먹어?"

  "먹을수있을것같지만, 꼭필요하진않아"

 

 토도마츠는 내심 안도했다. 설령인간을먹이감으로삼는다해도, 남아있는육신쪽이라면얼마든지넘겨줄수있고-

  

  "아! "

 

 그러던중, 문득꼬마호랑이를배불리먹일수있을법한장소가떠올랐다.

 

  "꼬마, 넌운이좋다고! 그럴싸한곳이생각났거든?"

  "오우!"

  "자자, 어서가보자고~"

 

 토도마츠는호랑이를번쩍들어한쪽어깨에걸쳐올린후발걸음을옮겼다.

 

 

 

 

 

  "헤에...여긴어디지?"

 

 두요괴가도착한곳은눈에잘띄지않는동굴이었다.

 안쪽으로들어가니약재느낌이나는풀떼기들부터인간들의마을에서나볼수있을법한먹거리와짐승의고기, 그밖에도온갖잡기들이모여있었다.

 

  "아까그여우녀석의보물창고! 저번에우연히발견했는데, 나한텐쓸모없는것들뿐이라그냥넘겼었거든. 호랑아, 여기서잔뜩배채우고맘껏어질러도되니까-"

  "그래도되는건가?"

  "그럼그럼~"

 

 호랑이는토도마츠의살살거리는미소를보고는, 땅으로풀쩍뛰어내려잔뜩쌓인식재들틈으로도도도달려갔다.

 꼬마가식사를하는동안, 토도마츠는주변을찬찬히살펴보았다. 뭔가더골려줄게없을까싶어서였다.

 동굴안은인간들로부터받은것인지약탈해온것인지여기저기족자니나무조각인형이니하는것들이굴러다니고크고작은짚으로엮어만든조악한바구니부터꽤나견고해보이는나무함까지, 온간잡동사니들로빽빽했다. 

 

 -그러던중, 다른바구니나상자들보다좀고급스러운느낌이나는, 자개장식이있는흑단함하나가눈에들어왔다. 안쪽에서희미하게뭔가빛나고있는듯한느낌도들었다. 행여여우가돌아올까싶어, 동굴밖을잠시살핀후조심스레상자를열어보니인간들의영혼을엮어만든작은구슬들이희미한빛은내며영롱하게잠들어있었다.

 

 '아항-'

 

 아마도여우의보물중에서도가장진중한것이리라. 토도마츠는침을꿀꺽삼키고는, 구슬들을양손가득히쥔다음- 

 

  "에잇-!"

 

 딱딱한동굴바닥으로내팽개쳤다.

 구슬들은풍경소리와도같은찰랑거리는음색을내며바닥에닿아파스스흩어지고, 안에갇혀있던영혼들이제각각의색을뿜으며동굴밖을벗어나, 푸른하늘로멀어져갔다.

 

  "에...그거, 그래도되는건가?"

 

 케케묵은먼지라도털어낸양뿌듯한표정을하고있는토도마츠를향해호랑이가말을건넸다.

 토도마츠가돌아보니뭔지모를짐승의다리를질겅질겅물고있는꼬마의모습이보였다.

 

  "에에~ 당연히안되지! 하지만너도나랑공범이니까, 얼른식사나마치라고"

  "아, 알았다!"

 

  허겁지겁배를치우는와중에살랑거리며흔들리는꼬리가눈에들어왔다.

 

  '그래, 가끔은누군가랑같이시간을보내는것도나쁘진않지-'

 

 그렇게생각하며, 토도마츠는늘어지게기지개를켰다.

 늦겨울의찬공기가, 아직은이어질것이다.

 

 

 

 

 

 

 2주정도의시간이지나자산의빛깔이바뀌기시작했다. 내렸던눈은대부분녹아사라지고, 지금눈앞에놓인작은나무한그루.  목련나무의가지끝으로, 드디어눈이보이기시작했다.

 

 - 겨울이끝났다.

 

  "호랑아, 넌계절은안타려나?"

 

 아직어려낮고가는목련나무의밑동을잡고는괜스레흔들어대는호랑이를향해토도마츠가말을건넸다.

 

  "흠, 확실히날이따뜻해지긴했군! 하지만이몸은딱히변화는못느끼겠다만- 유키는이제잠을자는건가?"

  "에엑, 무슨곰도아니고...자는건아냐. 그냥서늘한곳에몸을숨기고지내는거지."

  

 토도마츠의대답에, 호랑이가나무를흔드는걸관두고토도마츠쪽으로쪼르르달려와말을이었다.

 

  "그렇다면유키가자는곳까지함께가주지! 지난번에지켜주기로약속도했으니까"

  "하하, 너가날지킬수나있겠어~? 그래도같이가주는건좋네"

 

 가을까지줄곧머물거처야, 매년그장소가정해져있으니크게고민할필요는없었다.

 자신을졸졸쫓아오는호랑이를흘끔흘끔돌아보며토도마츠가걸음을재촉했다. 딱히급할건없었지만- 

 

 사실, 지난번여우의창고를어지럽히고도이제껏아무런소식이없다는것이좀꺼림칙했다.

 금방찾아와서는겁을주든화를내든하는게당연한수순인데, 그후로아직까지코빼기도보이질않는것이었다. 그렇다보니얼른거처로들어가틀어박히고싶은것이솔직한심정이었다.

 그렇게내심불안한마음으로동굴근처까지다다랐을즈음-

 토도마츠는, 돌연주변의온도가올라가는것을느꼈다.

 

  "유키, 갑자기좀더워진것같은데...괜찮...유키?"

 

 빠르게걸음을옮기던토도마츠가우뚝멈춰서자호랑이가걱정스레그를올려다보았다.

 토도마츠가멈춰선것은, 단순이온도가올라가서는아니었다.

 

  "키츠네비(狐火)....."

 

 토도마츠의중얼거림에호랑이가주변을두리번거렸다. 그제서야앞뒤로촘촘히두요괴를막아서고는푸른불꽃들이둥실둥실떠있는것이눈에들어왔다.

 

  "그래, 내가부리는녀석들이지. 꽤쓸만하다구? 특히너같이열에약한녀석들한테는말야."

 

 뒤쪽에서익숙한목소리가들려왔다.

 

  "어때? 내말이맞지? 토도마츠"

 

 9개의꼬리를바짝세우고는, 여우가모습을드러내었다.

  

  "응, 확실히. 이건좀곤란하네~ 오소마츠."

 

 토도마츠가살살뒷걸음을치며애써웃어보였다. 조금씩거리를좁혀오는여우, 오소마츠의살기에호랑이가그앞을막아섰다.

 

  "이녀석이지? 너랑같이내집을엉망으로헤집은게"

 

 오소마츠가비웃음가득한표정으로이를세우고는갸르릉거리는호랑이를내려다보았다.

 

  "-이런하급요괴같은거데리고있어봤자,"

 

 그렇게말하며, 오소마츠가느닷없이발밑의호랑이를있는힘껏걷어찼다. 갑작스런공격에뭐라한마디말도못하고, 작은호랑이가그대로흙바닥을굴렀다.

 

  "하나도도움안된다구~?"

  "하하, 응..확실히, 그런것같네...그래도좀심하지않아? 힘도없는애를말야"

 

 쓰러져서는미동도않는호랑이가걱정됐지만, 토도마츠에게할수있는일은없었다. 토도마츠자신은인간을상대로한몇몇잔기술이있을뿐, 요괴랑맞설수있을정도의능력은가지고있지않았다. 하다못해하늘을날거나빠르게달리거나하는능력이라도있으면좋았을텐데.

 

  "됐고, 지금까진그래도옛정이있어서그냥넘어갔었는데. 이번엔좀심한거아냐? 남이소중히모아온걸그렇게마구잡이로없애버리면되겠냐구"

  "그러게평소행실을바르게했어야지. 그정도쯤이야다시모으면그만아냐?"

  "맞아! 그렇지, 그렇게어려운일도아냐"

 

 오소마츠가킥킥거리며대답했다. 들썩이는어깨에맞춰어느새바싹거리를좁혀온여우불들이함께푸스스하고는떨리는것이, 은근위협적이었다.

 

  "다시만들어야지~! 그중에서첫번째보물을우리토도마츠의영혼으로하려고, 이렇게온거아니겠어?"

 

 그말과동시에주변의여우불들이사방으로흩어졌다.

 뭘하려는건진모르겠지만생명의위협을느낀토도마츠는, 재빨리몸을놀려바닥에널부러진호랑이를낚아채걸어왔던방향으로도망치기시작했다.

 

 

  "유키..."

  "나중에! 호랑아, 나중에!"

 

 그새정신을차린호랑이가말을걸어왔으나토도마츠가그말을가로막았다. 오소마츠는진심인것같았다. 그깟구슬이뭐라고- 정말로, 죽게생겼다. 

 

  "으악!"

 

 얼마가지못해, 맞은편수풀에서불꽃이일었다. 불꽃은순식간에옆가지로옮겨붙어주변일대를뜨겁게잡아먹기시작했다. 토 도마츠는그제서야오소마츠가뭘하려는지알것같았다. 

 

  "야~ 도망쳐도소용없다고.이오소마츠님이너같은거하나못잡을리가없잖아?"

 

 그렇게말하는사이에도불은옆으로옮겨붙어, 어느새요괴 3마리를둘러싼원형의고리가완성되었다.

 

  '끝났다....'

 

 구미호오소마츠는불을다루는것이특기인요괴였다. 애초에자신과는상성이맞질않는데다가, 급이달랐다.

 

  "너..너무하잖아! 그깟구슬이뭐라고!"

 

 두려움에바닥에주저앉은채로토도마츠가소리쳤으나오소마츠는대꾸조차하지않고는, 두요괴를잠시바라보다등을돌리고는불꽃너머로사라져버렸다. 그대로불에타죽게내버려둘셈이리라.

 

  "내가..뭘어쨌다고..."

  "유키..."

 

 거의울다시피겨우겨우목소리를짜내는토도마츠에게, 비척거리며몸을일으킨호랑이가말을건넸다.

 

  "호랑아, 미안...나때문에너까지죽게생겼네"

 

 토도마츠가호랑이를꼭끌어안으며글썽였다.

 

  "유키, 나기억났다"

 

 토도마츠에비해무척침착한목소리로, 호랑이가입을열었다.

 

  "응? 뭐가?"

  "내이름. 내이름은카라마츠다. 미즈토라가아니지만- 뭔지는, 잘모르겠어"

  "헤에..."

 

  지금그런거알아봐야아무런소용도없다고- 

 -토도마츠는소리치고싶었지만, 그조차도무의미하게느껴져입을닫았다.

 그저까마득하게, 눈앞이어두워짐을느꼈다.

 그러는사이에도불길은성큼성큼코앞으로다가와, 숨을조여왔다. 

 더이상은제대로앉아있는것도힘들어-

 

  "약속대로너를지킬거다!"

  "헤에..그거..고맙네"

 

 쥐어짜듯이겨우겨우말을내뱉었다.

 

 - 그리고,

 흐려져가는시야너머로, 카라마츠의털이희미하게빛나는것이보였다. 처음엔희멀건하니하얀눈꽃에라도뒤덮이는것인가싶다가, 금새푸른빛으로바뀌며온몸의털을쭈뼛쭈뼛세웠다. 그와동시에조금씩, 몸집을키워가며, 한마리성체의호랑이와도같은모습을갖추어갔다. 

 

 - 크르릉...

 

 호랑이가푸르스름한빛을내뿜으며낮게그르릉거리자, 마치천둥과도같은소리가귓가에울리는듯했다.

 아니, 정말로, 힐끔하늘을바라보니어느새하늘이온통먹구름으로가득해있었다.

 

 -번쩍, 하고. 하늘이빛나는것을보았다.  

 그리고한방울, 두방울. 떨어지는빗방울이토도마츠의볼위를타고흘렀다.

 

  '- 아, 그렇구나.'

  "호랑아, 역시너는미즈토라같은게아냐- "

 

 작은목소리로, 중얼거리듯토도마츠가말했다.

 

  "그보다도훨씬큰, 아마도라(天虎)구나-"

 

 - 달콤한호랑이(甘い虎)라는건가? 라고물어오는카라마츠의목소리가마치물속에서듣는바깥세상의소리처럼멀리서웅웅거리는듯했다.

 

  '멍청이, 그게아냐'

 

 굵어진빗줄기가기분좋게몸을적셔왔다.

 온산이갑작스레내린비로웅성이는것이느껴졌다.

 

 이제부턴점점더워질것이다. 

 

  "카라마츠"

 

 토도마츠가활동할수없을정도로.

 

  "내이름은토도마츠. 토도마츠야"

  

 - 하지만,

 겨울은다시올것이다. 

 

 그렇게굳게믿으며, 아직남아있는열기에버티지못하고토도마츠는눈을감았다.

 그곁으로, 어느새다시자그마한모습으로돌아온카라마츠가다가와조용히볼을핥았다.

 

  "잘자, 토도마츠"

 

어느새두마리의요괴를둘러싸고있던불길은사그라들고있었다. 

 

 

때아닌봄비를시작으로, 요괴들의산이새로운계절로물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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