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대감에 찬 눈이 나를 향하는 게 무척이나 싫었다. 싫다기보다는 괴로웠다. 어린 아이일 때, 그다지 할 수 있는 게 없을 때는 역설적으로 항상 누군가의 기대에 차고 넘치도록 보답해 줄 수 있었다. 걷기만 해도 환호를 받고 뛰기라도 하면 박수갈채를 받았다. 의미모를 선을 그려도 장래의 화가였고 예술가였다. 하지만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가면서 때때로 안하느니만 못한 성과를 내는 것을 볼 때마다 스스로가 괴로웠다. 그 정도 밖에 안 되는 사람이 아니지 않느냐며 몰아치는 채찍도, 더 잘할 수 있을 거라는 격려도 전부 무서웠다.
집에서 최대한,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대학을 가서 집이 멀다는 이유로 몇 년 동안 한 번도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어찌어찌 졸업해서 학교 양호 선생님이라는 직책을 받고 양호선생이 되었으니 이제 혼자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다는 연락 외에는 다른 연락은 거의 하지 않았다. 한다면 연말에 한 해 동안 잘 지내셨는지 묻고 다음 해도 잘 지내시라는 말을 하는 정도가 거의 다였다.
그리고 부모님이, 양친 모두 돌아가셨다는 전갈을 받고 나서야 뭔가에 이끌리듯 간 고향에서 나는 이미 제 부모가 죽어 가 는데도 오지 않고 다 끝난 다음에야 온 패륜아가 되어있었다. 뭐 겉으로야 아무 일 없는 듯 평범한 생활을 이어갈 뿐, 속으로는 제각각 어떤 생각을 하는지 훤히 보였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이제는 휑해진 집안에 들어가 살게 되었다. 어느새 명의를 바꿔두셔서, 이전에 살던 집은 어차피 전세집이니 그 해만 채우고 새로 이사하며 집 근처 학교로 발령받았다. 한때 정말 사랑하고 아껴주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3개월 만에 다시 찾은 집은 퀴퀴한 먼지 냄새와, 벗겨지려고 하는 벽지와 장판으로 나를 맞이했다.
창문을 활짝 열고, 상한 음식 이외에는 없는 냉장고를 아예 버리고, 도망치기 전의 마츠노 이치마츠와는 상당한 괴리가 생겼다고 자조하면서 집안 곳곳을 청소했다. 때때로 울컥하기도 하고 눈물이 주르륵 흘러 소매로 벅벅 문지르기도 하면서 하루를 그렇게 보냈다. 괜히 시큰한 통증이 밀려오면 가만히 자리에 앉아 멍하게 바닥을 보았다. 한때 따듯했던 공간에 내려진 적막이 고맙기도 하고,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렇게 일 년 정도를 조용히 살았다. 이웃과의 교류는 거의 없고, 마을 반상회 같은데서 만들어져 곳곳에 붙어있는 알림들을 보고 규칙은 지키지만 말은 없고 참여는 하지 않는 사람으로. 학교에서 소독약 냄새나는 양호실에서 주로 노트북으로 일하고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고양이 책을 보고 잠드는 게 내 일상이었다.
"큐우우..."
밤에 술을 사려고 편의점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굳이 피할 생각도 없이 느릿느릿 걸었다.
"어..."
"우우..."
주워가세요, 라고 성의 없게 써진 글자가 빗물에 차차 번져가는 박스 안에, 작은 호랑이가 있었다. 얼굴은 사람인 것을 봐서는 그쪽 계열의 아이 같았다. 고양잇과 동물을 좋아하는 나에게 버려진 토라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거기 방치되어있었는지 차가운 몸에 과하게 깨끗한 먹이그릇을 채 확인하기도 전에 나는 차게 젖은 토라를 품에 안고 뛰어가고 있었다.
편의점은 들르지 않고 곧장 집으로 와서 따듯한 물에 토라를 씻겼다. 아까와 같은 끊어질 것 같은 숨소리가 아닌 새근거리는 숨소리를 내며 잠든 토라에게 담요를 하나 덮어주고 품에 안아 재웠다. 자면서도 행여나 떨어질세라 내 옷을 꼭 쥐고 잠든 모습이 애처롭기만 했다.
"..."
휘엉청 달이 뜬, 차가운 비가 세차게 내리는 어두운 밤. 토라를 만났다.
"카라마츠... 나 왔어..."
"이치마츠!!"
환하게 해실 웃으며 거의 구르듯 달려오는 토라를 보니 묵은 스트레스가 다 풀리는 기분이었다. 그 다음날 론리한? 여하튼 뭐라 길게 수식어를 붙이며 자기소개를 한 토라는 제 이름은 카라라고 했다. 내 이름 뒤의 마츠를 붙여 카라마츠라고 부르겠다고 했고, 내 이름은 이치마츠라고 가르쳐주었다.
곧 죽어도 전 주인과의 일은 말하지 안하려는 통에 병원에 대려가 검사를 받아야했다. 전 주인이 식사로는 뭘 주고, 병원에 와본 경험이 있는지에 대한 물음에도 도리도리 고개만 흔들었다. 병원에서의 검진결과는 어느 정도 예상대로였다, 영양결핍이 꽤 있고, 그게 털이 뻑뻑하고 몸이 작은 이유라고 했다. 게다가 타박상의 흔적이 많이 있고 제대로 치료된 게 거의 없다고 했다. 주사도 한 방 맞고, 온 몸 구석구석 연고를 발라야 했다. 영양제와 약을 받아온 다음 기운이 없어 보이는 토라를 품에 안고 돌아왔다. 괜찮아, 이런 거로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라고 말하자 그제야 응! 이라고 답하며 내 가슴팍에 뺨을 부비는 녀석을 보니 전 주인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안 봐도 뻔했다.
"야, 너..."
"케... 커헉.... 웩..."
갑자기 먹던 간식을 토하며 콜록거리는 녀석에 순간 심장이 꽉 조이는 것 같이 아팠다. 당황해서 내 몰골은 생각지도 못하고 토하는 녀석의 입가만 겨우 씻기고 재빨리 병원으로 데려갔다. 처음 만나던 그 날처럼 세찬 비가 내리는 밤을, 토라에게 담요를 덮은 채로 우산도 없이 뛰어갔다.
"...네?"
믿을 수 없었다. 이제 얼마 안 남았다, 라고 의사는 안타까운 눈으로 말했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카라마츠를 품에 안은 채로 멍하게 수의사의 말을 들었다. 사람 병만 볼 줄 알지 동물 병에는 사람만큼 확인하지 못하는 나에게 떨어진 사형선고였다. 그렇게 고양잇과 동물을 좋아하던 것은 다 어디가고 애가 죽음에 가까워진 때가 돼서야 알아차린 나는 대체 뭐지...?
"뭐라고 말 좀 해봐... 평소에 잘만 이야기하더니, 왜..."
색색거리며 괴로운 듯 얼굴을 찌푸리는 카라마츠의 등을 토닥이며 말하다가 그제야 스스로 알았다.
토라. 인간과 호랑이가 섞인 것 같은 외형. 얼굴은 사람 얼굴에 관절도 대부분 사람의 것과 유사. 인간과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해 애완으로 인기가 높다. 5살 아이 정도의 지능. 호불호 표현이 확실하고, 기억력도 좋음. 5살 아이, 호불호 확실, 기억력 좋음...
"...너..."
품에 있던 카라마츠를 내려다보았다. 필사적으로 얼굴을 숨겼지만 옷에 닿는 후끈한 열기와 물기가 상태를 알려주고 카라마츠의 상태를 알려주고 있었다. 과한 호흡곤란을 보이는 녀석을 품에 꼭 안았다.
너는 기억력도 꽤 괜찮고 눈치도 좋고 학대받은 경험이 있다. 그러니까
내가, 기대 받는 걸 싫어한다는 것을 알았겠지.
내가, 점점 자신을 그냥 어린 동거인 수준으로 대한다는 것을 알았겠지.
내가, 자신에 대해 관심이 떨어져가고,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육구나 빌린다는 것을 알았겠지.
만약 자신이 더 조르거나, 애교부리지 않아서 스트레스 해소용으로도 쓸모가 없어진다면
전 주인처럼, 마구 때릴 거라고 생각했겠지.
전 주인처럼, 밥을 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겠지.
전 주인처럼, 차가운 바람이 부는 비 오는 밤에 자신을 내다 버릴 거라고 생각했겠지.
그러면 또다시 친절한 사람이 발견해주길 기다리며 오들오들 떨어야한다는 것을 기억해서
그래서 아프다는 티를 못 냈겠지.
아프면 가치가 떨어진다고 버림받을게 무서워 말도 못 꺼냈겠지.
늦게 오는 주인에게 최선을 다해 웃어주고 낮에 주인이 없으면 혼자 앓았겠지.
"카, 라마츠..."
"이, 치... 마, 츠..."
숨을 몰아쉬는 틈틈이 하는 말은 이미 상당히 뭉개져있고 어눌해져 있었다. 이미 눈은 벌써 흐려져 있었다. 아니, 내 앞이 흐려져 네가 흐리게 보이는 건가? 이제 어느 것도 확실하게 분간할 수 가 없다. 그렇지만 이 상황에서도 네가 웃고 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조, 아...."
말을 끝맺지 못하고 너는 내 품에 안긴 채로 잠이 들었다. 담요를 덮어줘도, 내 옷을 쥐어줘도, 털을 골라줘도 눈치 채지 못하는 깊은 잠에 들었다.
놀아주지 않고 건조하게 밥만 주고 가는 내 뒷모습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어리광부리고 싶은걸 참고 주인이 해준 거라면 뭐든 좋다며 웃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프다고 말하고 싶은걸 삼키고 환하게 웃으며 나를 볼 때, 너는 사실 뭘 말하고 싶었을까...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그동안 외면해왔던 마음들이 한꺼번에 스며들어 눈으로 쏟아진다.
"아아아아아.....!!!!"
얼마나 시간이 지났다고 벌써 딱딱하게 굳어가는 몸을 껴안고 병원 복도에서 울었다. 색색거리던 가쁜 열기도 없는, 젖은 물기만 가득한 셔츠와 비에 젖은 지 오래인 담요로 너를 쌓았다. 터덜터덜 돌아오는 길거리 곳곳에 새겨진 너를 외면하고 집으로 돌아오기가 참 어려웠다. 마트 앞에서, 개천 앞에서, 다리 앞에서 걸음마다 밟히는 너를 두고 가기가 참 어려웠다. 당장이라도 품에서 뛰쳐나와 저 만치 달려갔다가 다시 돌아올 것 같은데 품에 있는 너는 지나치게 조용하고 딱딱하다.
사설업체를 알아봐서 장례식을 할 때야 함께 찍은 사진이 한 장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너만 찍은 사진도 열장이 채 안됐다, 급한 대로 내 사진 중 가장 괜찮은 것을 골라 엉성하게 합성해서 너를 담은 작은 상자에 같이 넣어주었다. 한창 거기에 서 있다가 폐관시간이 되어, 더 이상 문 열어도 밥을 많이 차려도 맛있는 요리를 해도, 딸랑이를 흔들어도 아무 반응이 없는 휑한 공간으로 돌아왔다.
빈 집에 네 향기가 가득한 딸랑이 소리가 울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