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라마츠는 평소와 다를 바 없이 평화롭게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그는 오늘도 아침 일찍 인간들의 마을로 일하러 나간 엄마가 맛있는 것을 가져오길 바라며, 집안일을 하는 아빠를 따라다니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직 어려 완벽하게 인간형으로 변신하는 법을 깨우치지 못했기에 새끼 호랑이 모습을 한 채 네발로 뒤뚱뒤뚱 제 뒤를 쫓아다니는 아들을 번쩍 안아 든 아빠는 사랑스러운 자식의 얼굴에 뽀뽀 세례를 퍼부었다. 카라마츠는 좋다고 아빠를 쫓아다닐 땐 언제고 제 얼굴에 닿는 아빠의 입술을 질색하며 얼굴을 밀어냈다. 하지만 그조차도 사랑스러웠기에 아빠는 볼을 밀치는 아들의 말캉한 발바닥 감촉에 잔뜩 허물어진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앙증맞은 발을 붙잡고 쪼물거리며 마냥 행복하게 웃었다.
“카라마츠, 이제 곧 마미가 올 시간이네.”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하며 그가 말했다.
“캬웅.”
‘마미’라는 말에 정신없이 꼬리를 흔드는 사랑스러운 아들을 보던 그는 걸치고 있던 앞치마를 벗어 의자에 걸쳐놓곤 반짝이는 눈으로 저를 보는 아들에게 씨익 웃어준다.
“좋아, 카라마츠! 우리 마미, 마중 나갈까?”
“웅!! 웅!!”
신나서 폴짝폴짝 뛰는 아들을 안아 들고, 만약을 대비해 모자를 눌러쓰는 것으로 준비를 마친 그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집을 나섰다. 집 앞에 무성하게 자란 풀숲을 헤쳐 걸으며 카라마츠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아직 ‘말’을 제대로 못 하는 카라마츠라서 그 혼자 떠드는 것 같았지만 아빠 품에 안겨있는 카라마츠의 뭉툭한 귀는 아빠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고 있다는 듯, 그의 말에 따라 연신 쫑긋쫑긋 움직이고 있었다.
그 사랑스러움에 바보처럼 헤하고 무너지려는 표정을 몇 번이고 다잡으며 숲의 가장자리까지 걸어나간 그는 굵은 나무들 사이로 쏟아지는 빛을 보며 말했다.
“조금 있으면 ‘바깥’이야. 오늘은 우리 저쪽에 가서 기다릴까? 카라마츠.”
“웅!”
좋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 아들의 얼굴을 따라 웃으며 그는 걸음을 옮겼다. 수인 특유의 예민한 코에 어렴풋이 부인의 향이 바람에 실려 오는 것을 감지한 그의 걸음이 서서히 빨라지다, 막 숲 밖으로 발을 디디려는 차에 급히 멈춘다. 역시나 엄마의 향을 감지하고 조금 있으면 엄마를 본다는 사실이 좋아서 일찌감치 앞발을 번쩍 들고 만세를 부를 준비하던 카라마츠는 의아한 얼굴로 아빠를 올려본다.
“웅…야?”
아빠의 얼굴은 무섭게 일그러져있었다. 관자놀이에 불룩하게 솟아오른 핏대와 날카롭게 돋아난 송곳니, 시퍼렇게 빛나는 안광, 가슴에서부터 울리는 나지막한 으릉거림까지. 아빠의 낯선 모습에 카라마츠는 덩달아 바짝 긴장한 얼굴로 아빠를 부른다.
“퍄?”
“쉬잇.”
앞발로 제 입을 막은 카라마츠가 안절부절못하다 아빠의 시선을 쫓아 숲 너머로 시선을 돌렸다. 아빠는 아차 싶어서, 재빨리 몸을 돌렸으나 카라마츠는 이미 봐버렸다. 정돈된 인간들의 길 한가운데 쓰러져있는 제 엄마를.
“먀?”
“쉿, 카라마츠.”
“퍄, 먀!”
“카라마츠!”
제 엄마를 향해 팔다리를 버둥거리는 아들을 꼭 끌어안고 그는 움직였다. 그녀가 있는 방향이 아닌 숲의 깊은 곳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의아함과 당혹스러움에 카라마츠는 아빠의 어깨를 두드리며 엄마가 저기 있다는 신호를 보내며 캬웅, 캬웅 울었지만, 아빠는 그를 무시하며 이를 악물고 달렸다. 그러자 고요했던 숲 여기저기가 분주해지며 사방에서 바스락바스락 잎사귀들이 거칠게 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들켰다!”
“전부 쫓아!”
저 멀리서부터 낯선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무섭게 악을 쓰는 목소리들에 흠칫 몸을 굳히는 아들을 더욱 꼭 끌어안으며 그는 전속력으로 달렸다. 어느새 동물의 모습으로 화하여 아들을 입에 물고 달리는 아빠였고, 카라마츠는 그에 급속도로, 엄마가 있는 곳에서 멀어져갔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아직 어린 카라마츠는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밀려오는 불길한 예감에 카라마츠의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바람에 흩어졌다. 산록이 우거진 여름의 숲에서 이미 서로 거리가 벌어진 상태인 데다 전력으로 도망가기로 마음먹은 수인을 아무리 인간들이 용을 써도 잡을 수는 없었다. 점점 거리가 벌어질수록, 초조해진 인간들의 입에서 갖은 악담과 욕설이 튀어나왔다. 아직 어린 카라마츠는 그 의미를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것이 좋지 못한 소리라는 것만은 알아차렸다.
먀.
흙바닥에 쓰러져있던 엄마가 계속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집에서도 제법 떨어진 저장고였다. 겨울을 대비한 비상식량, 말린 과일 등을 보관하는 작은 저장고는 숲에서도 가장 깊고 은밀한 곳에 존재하는 자연 동굴로, 인간들은 절대 찾을 수 없는 위치인 폭포 뒤, 절벽 틈새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는 카라마츠를 그곳으로 밀어 넣었다.
아빠에게 떠밀려 동굴로 들어간 카라마츠는 아빠를 돌아봤다.
“퍄퍄?”
왜 여기로 온 거냐는 듯, 저를 부르는 아들의 목소리에 그는 애써 웃어주며 빠르게 당부했다.
“카라마츠,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여기서 나오면 안 돼. 알았지?”
“우웅?”
“응, 아빠가 지금 엄마 데리러 가는 거니까.”
“캬웅?”
“절대, 절대 무슨 소리가 들려도 밖에 나오면 안 돼. 카라마츠, 말린 육포 좋아하지? 여기 그거 많이 있으니까 배가 고프면 그거 먹으면 돼. 먹고 싶은 만큼 먹고 있어. 알았지? 아빠가 엄마 데리고 알아서 여기 들어올 거니까 누가 밖에서 불러도 절대 나오면 안 돼.”
“웅.”
“응, 착하다. 카라마츠. 내 아들.”
눈물로 엉망이 된 아들의 눈가를 닦아주며 그는 아들의 볼에 뽀뽀했다. 카라마츠는 쪽하고 제 얼굴에 닿는 아빠의 입술을 이번에는 밀어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뭔가를 느낀 듯, 평소와 다르게 떼도 쓰지 않고 마냥 얌전한 아들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은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재차 당부했다.
“사랑한다. 카라마츠. 꼭 여기서 기다려. 알았지?”
카라마츠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굴을 빠져나가는 아빠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무성히 자란 덩굴이 곧 입구를 가리고 아빠가 움직이는 소리는 무거운 폭포 소리에 묻혀 예민한 귀에도 금방 들리지 않게 되었다. 한참을 서서 입구만 보던 카라마츠는 가만히 제 몸을 웅크리고 얼른 저기로 엄마, 아빠가 저를 데리러 오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
산더미처럼 쌓여있던 식량들이 점차 줄어들고, 자다 깨는 것을 몇 번이나 반복하고, 덩굴 너머로 해와 달이 교차하는 것을 몇 번을 봤는지 헷갈릴 무렵, 지쳐버린 카라마츠는 엄마 아빠가 너무나도 그리워 흐릿해진 아빠의 당부를 어기고 밖으로 나갔다. 카라마츠는 기억을 더듬어 한참을 걷고 걸어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집’에 도착했다. 카라마츠는 활짝 열려있는 문으로 얼굴을 내밀며 엄마, 아빠를 불렀다.
“퍄? 먀?”
집안은 부서지고 깨진 물건들로 난장판이었다. 카라마츠는 자신이 기억하는 집과 딴판인 안으로 차마 발을 내딛지 못하고 문밖에 서서 애타게 엄마와 아빠를 불렀지만,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아빠가 매일 쓸고 닦아 먼지 한 톨 앉을 틈 없이 반짝이던 포근한 거실은 누구 것인지 모를 낯선 발자국들로 흙투성이였고, 벽지도 잔뜩 찢기고 흙먼지로 뒤덮여 제 색을 잃은 상태였다.
카라마츠는 공포로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삼키며 두려움으로 바들바들 떨리는 다리를 겨우 움직였다. 바깥이 더 깨끗하다 느껴질 정도로 엉망인 바닥을 조심조심 걸어 슬쩍 부엌으로 고개를 디밀며 아빠를 불러봤다.
“퍄퍄?”
그 날, 아빠가 저녁으로 준비해놨던 스튜는 바닥에 엎질러져 오물이 되어 썩어가고 있었고, 식탁은 물론이고 다정하게 모여 있던 의자 세 개도 불쏘시개 장작마냥 조각나 바닥에 흩어져있었다.
코를 훌쩍이던 카라마츠는 아빠, 엄마의 방으로 달려갔지만, 그곳도 사정은 마찬가지였고, 카라마츠 자신의 놀이방은 발을 디딜 수도 없게 아예 입구가 막혀있었다. 부서진 나무 조각들로 막힌 방문을 머리로 툭툭 두드리며 엄마, 아빠를 다시 불러봤지만, 안에서는 그 어떤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집 안을 정처 없이 헤매던 카라마츠는 엄마가 쓰러져있던 곳으로 가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억센 잡초들이 부드러운 발바닥을 찔러와 따끔거렸지만 카라마츠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별들이 쏟아질 것처럼 떠오른 밤이 되어서야 기억하고 있던 그곳에 도착했지만, 그 자리엔 아무것도 없었다. 아빠가 절대로 혼자서 사람이 만든 길에는 가지 말라고 했지만 지금 카라마츠에게 남은 것은 이곳뿐이었다.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살핀 카라마츠는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조심스럽게 ‘길’ 위로 걸어갔다. 킁킁, 바닥에 코를 대고 엄마, 아빠의 흔적을 찾았다. 어둠 속에서도 확연히 검게 보이는 말라비틀어진 흙에서 엄마의 냄새가 어렴풋이 나는 것도 같았지만, 주변엔 아무것도 없었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카라마츠는 털썩 검은 흙 위에 주저앉았다. 아빠의 말도 어기고 용기를 끌어모아 ‘인간들의 길’에 섰는데 엄마도, 아빠도 아무것도 없었다.
“퍄퍄….”
훌쩍훌쩍, 어린 수인의 울음소리가 길 위에 쏟아졌다.
한참을 울던 카라마츠는 혹시 부모님이 돌아와 있지는 않을까 싶어 집에도 다시 가보고, 폭포 뒤의 저장고에도 다시 가봤다. 하지만 저장고에서 발가락을 전부 사용해 날짜를 헤아린 후에도 카라마츠가 기다리는 부모님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 후로 다섯 번 더 뜨고 지던 달을 보며 부모님을 기다리던 카라마츠는 하도 울어서 따끔거리는 눈가를 부비며 집에서 엄마가 만들어준 제 작은 배낭을 가져와 그 안에 먹을 것을 가득 채웠다.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빵빵한 배낭을 호기롭게 짊어진 카라마츠는 제 둥지와 같은 숲을 뒤로하고 걷고 또 걸었다. 아빠와 엄마를 찾아 무작정 걸었다. 편편하게 고른 인간들의 길은 다니면 안 된다는 것만은 확실히 배웠기에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풀이 무성하게 자란 곳만 걸었다. 보드라웠던 발바닥이 까지고 터져 아파졌지만 카라마츠는 그래도 아빠가 알려준 대로 ‘인간이 안다닐 법한 곳’만 걸었다.
방향을 보는 법도, 사냥하는 방법도, 인간으로 변신하는 방법도 아직 어려 홀로서기에 필요한 것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카라마츠는 제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그냥 걷고 걸었다.
몇 번째인지 모를 혼자 맞는 밤이 흘렀고, 매고 있는 가방은 점점 가벼워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았던 육포 한 조각을 먹은 지 사흘이 지났을 때쯤, 카라마츠는 어느 작은 못에 당도했다. 하늘 위의 달을 고스란히 비추는 수면에 그 어떤 일렁임도 없이 고고하게 존재하는 연못을 보는 순간 카라마츠는 어쩐지 서글퍼져 느릿느릿 연못을 향해 걸어갔다. 서글프기도 하고, 배도 고프기도 하고, 갈증이 몰려오기도 했다. 물이라도 마시자 싶어 카라마츠는 목을 길게 빼고 연못에 얼굴을 댔다. 그리고 그 순간, 지나친 허기로 현기증이 일어 그대로 연못에 빠지고 말았다.
◇◆◇
그것은 아주 오래전의 그리운 풍경.
-여신님!
그러니까, 난 남자라고! 여신은 전대!
그렇게 말해도 들어먹지 않는 답답한 존재들이었지만-, 그래도 약해빠진 저 같은 것도 신이라고, 여신님이라고 불러주던 존재들이었다. 기껏해야 연못에 빠뜨린 물건을 찾아주거나, 신세 한탄을 들어주거나, 잠깐 기침을 멎게 하는 작은 축복 정도밖에 못 내리는 그런 신출내기 신을 받들고, 아껴주던 그런 순박한 존재들.
신이라는 것은, 자신을 믿어주는 존재가 있을 때 힘을 발휘하는 법. 쵸로마츠는 갓 태어나 힘을 쌓기 시작하던 신이었고, 아직 그 힘이 완전하지 않던 때에-자신을 알고 있던 모든 생명이 무거운 흙더미에 묻어야만 했다. 호우로 인한 산사태였다.
그것을 보면서도, 직전에 알아차렸으면서도, 무거운 흙더미에 파묻히기 직전까지 저를 찾는 이들의 목소리를 들었으면서도 쵸로마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것이 섭리였고, 그 섭리를 거스르기엔 자신은 힘이 부족한 하급 신일뿐이었다.
생명이 피고 지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섭리임을 알지만 제가 사랑했던 것들을 한 번에 잃어버린 미숙한 신은 그들을 구하지 못한 자신의 무력함에 비탄에 잠겨 흙 아래에 잠든 것들을 쫓아, 연못 안에서 잠드는 것을 선택했다.
꿈에서 제가 보고 싶은 것-산사태가 모든 것을 집어삼키기 전 누렸던 행복한 것들만으로 이뤄진 꿈을 꾸고 있던 쵸로마츠는 천천히 눈을 떴다. 힘은 약하지만, 그래도 신이 잠든 성소이기에 그를 제외한 어떤 것도 살지 않는 이곳에 누군가 침입한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일어나고 싶진 않았지만, 이곳이 오염되게 둘 수는 없었기에 그는 어쩔 수 없이 수백 년 만에 눈을 떴다.
천천히 못 바닥을 향해 추락하는 작은 몸뚱이를 안아 든 여신은 감몽에서 깨어나 현실의 달을 보았다. 수백의 시간이 흐른 지금도 달은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처럼 여전히 처연했다.
◇◆◇
“쵸! 쵸!”
물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쵸로마츠의 감겨있던 눈이 떠졌다. 수면 위로 낯익은 노란빛이 아른거리는 것이 보였다. 부름에 응해 바로 나가려다 장난기가 일어난 여신은 쿡쿡 웃으며 물 안에서 그것의 움직임을 구경했다. 한참을 여신을 부르던 이는 연못에서 그 어떤 반응도 없자 지친 건지, 천천히 조용해졌다. 늘 그랬듯 금방 다시 저를 찾겠지 싶어 웃으며 기다리던 쵸로마츠는 한참을 기다려도 다시 조용한 노란빛에 어라? 하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별일이네. 다른 곳에 갔나?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 둥실, 몸을 띄우는 차.
노란 그림자가 아른거리던 부분에 낯익은 안면이 불쑥 물속에 나타났다. 공기를 입에 머금어 볼을 빵빵하게 부풀린 카라마츠가 질끈 감겼던 눈을 조심스럽게 뜨곤 휘휘 고개를 돌린다. 움직임을 따라 꼬마의 털이 나풀나풀 움직이는 것을 보며 쵸로마츠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쵸로마츠와 카라마츠의 눈이 마주쳤다. 휘둥그레 눈을 크게 뜬 어린 수인의 표정이 점차 환하게 빛난다. 그리고 제가 지금 어디에 얼굴을 박고 있는지 잊었는지 웃느라 입을 벌린 카라마츠는 제 입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물에 놀라 허둥거리다 그대로 고꾸라졌다. 저 바보! 풍덩 하고 요란한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린 쵸로마츠는 급히 위로 부상했다. 그리고 1년 전, 그때처럼 아래로 가라앉는 어린 몸을 안아 들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다행히도 정신은 잃지 않아 쵸로마츠가 등을 두드리는 정도로 켈룩 거리며 스스로 물을 토해낸 카라마츠는 돌연 서러워졌는지 눈물을 줄줄 흘리며 쵸로마츠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제 성의(聖衣)를 짤따랗고 통통한 손바닥으로 움켜쥐며 힝, 힝 소리 내며 우는 게 불쌍하기도 하고, 답지 않게 괜한 장난을 쳤다는 후회에 미안하기도 해서 쵸로마츠는 가만히 등을 쓰다듬어줬다.
그러다 문득 축축하게 손에 엉겨 붙는 털이 신경 쓰였다. 쪼그마한 녀석이 제 털을 어찌나 아끼는지 지난 몇 달을 봐 온 터였다. 잠시 망설이던 쵸로마츠의 손에 옅은 빛이 어린다. 빛무리에 둘러싸인 손이 물기로 엉망이 된 카라마츠의 털에 닿자 또르르, 물이 분리되어 하나의 구를 이뤘다.
훌쩍이던 카라마츠가 순식간에 보송보송해진 제 몸에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쵸로마츠의 손가락 움직임을 따라 몽슬몽슬 흔들리며 신비롭게 움직이는 물방울들을 발견하고 눈을 크게 떴다. 카라마츠의 시선이 제 손끝에서 흔들리는 물 덩어리에 쏠려있음을 깨달은 쵸로마츠는 오래전, 어린 신자들에게 보여줬던 작은 장난을 떠올렸다.
한 번 해볼까?
여신의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감정을 읽은 물방울들은 꽃이 되었다가, 별이 되었다가, 쪼롱쪼롱 귀여운 웃음소리를 내는 어린 새로도 변했다. 점점 반짝임이 늘어나는 카라마츠의 눈을 본 쵸로마츠는 자신감을 되찾고 빙긋 웃으며 물방울을 나비 모양으로 만들었다. 투명한 보석으로 빚은 듯, 햇살에 반짝이는 나비는 팔랑팔랑 날아 카라마츠의 코끝에 앉았다. 코끝에서 느껴지는 촉촉한 무게감에 카라마츠의 엉덩이가 움찔거리고 그것을 잡기 위해 손을 뻗는 순간, 나비는 위로 둥실 날아올라 천장의 꽃잎이 되더니, 곧 더 잘게 나뉘어 보슬비와 같이 아름답게 지상으로 쏟아졌다. 빗방울 커튼에 떠오른 선명한 무지개를 멍하니 보던 카라마츠는 여신의 품에서 짧은 다리를 아래위로 흔들며 말갛게 웃었다. 그 천진함에 쵸로마츠의 얼굴에도 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잠시 후, 진정이 된 카라마츠를 땅에 내려놓은 쵸로마츠가 물었다.
“오늘은 무슨 일로 왔나요, 카라마츠.”
“먀!”
왜인지, 처음 얼굴을 봤던 그 날부터 이 어린 생명은 종종 이렇게 자신을 엄마라고 부르곤 했다. 아빠라면 이해하겠지만, 남성체 신인 자신에게 여신에 이어서 엄마?
“난 엄마가 아니에요, 카라마츠.”
“쵸!”
“그래요, 쵸로마츠. 쵸로마츠에요.”
“쵸 먀!”
“…….”
카라마츠는 쵸로마츠의 침묵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의기양양하게 고개를 끄덕이곤 저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나무 그늘에서 자신의 낡은 배낭을 질질 끌고 왔다. 그리곤 입구가 활짝 열려있는 가방을 그 안이 훤히 보이게 벌리며 쵸로마츠에게 불쑥 내밀었다.
“아….”
색색의 꽃들이 꽃다발처럼 가득 들어있었다. 작은 가방 안에 들어있었음에도 꽃잎은 아무리 잔 것이더라도 하나의 상처도 없이 싱그럽게 물이 올라 있었다. 거기다 자세히 보니 일전에 말했던 ‘식물에도 생명이 있으니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인 듯, 꽃을 뿌리째 뽑아 흙도 털지 않고 넣어온 것이었다. 그걸 깨닫고 보니 가방은 꽃다발보다는 작은 화분과도 같았다. 어쩐지 꽃만 들어있는 가방치고 무게가 나가 보인다 했더니 그랬었다. 제 몸의 반만 한 크기의 가방을 조심스럽게 끌며 이곳까지 가져왔을 카라마츠가 상상이 되었다. 쵸로마츠는 아이의 넘치는 사랑스러움에 다시 들어 올려 품에 꼭 안았다.
“나 보여주려고 데려온 건가요?”
“캬웅!”
“선물 고마워요, 카라마츠.”
쵸로마츠는 카라마츠의 보드라운 볼에 가볍게 입을 맞추곤 어린 신자의 공양을 기껍게 받아들였다. 쵸로마츠의 시선이 닿은 카라마츠의 배낭이 둥실 떠오르더니 못 옆의 양지바른 공터로 날아갔다. 배낭에서 흙과 꽃들이 부드럽게 빠져나오고 배낭은 흙 알갱이 하나 안 남은 깨끗한 상태로 바닥에 사뿐히 떨어졌다. 뒤이어 공터에 작은 구덩이들이 파이고, 꽃들은 적당히 나누어져 그 안에 안착했다.
어린 호랑이가 신을 위해 데려온 꽃들은 이제 영원히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피고, 지고, 씨앗을 뿌려 다시 태어날 것이다. 쵸로마츠는 뿌듯한 얼굴로 순식간에 생겨난 작은 꽃밭을 보는 카라마츠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줬다.
“먀!”
기분이 좋은 듯, 카라마츠는 그 손길을 만끽하며 작게 울었다.
“그러니까 나는 쵸로마츠. 그것도 아니면 신님이라고 불러요.”
“쵸! 먀! 먀웅!”
신이기에 이 어린 수인의 울음이 무슨 뜻인지 아주 명확하게 알아듣고는 있지만, ‘쵸로마츠, 엄마, 엄마다.’라고 말하는 것에 대한 교정 교육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라고 느꼈다. 해서 그는 내일부터는 카라마츠에게 제대로 언어를 가르쳐야겠다고 다짐했다. 여신의 머릿속에서 짜지는 스파르타 교육 일정을 모르는 카라마츠는 마냥 지금이 행복할 뿐이었다.
◇◆◇
카라마츠에게 말을 가르치면서 도무지 교정되지 않던 것이 두 가지 있었다.
“여신님. 여신님은 왜 항상 여기에만 있는 거지?”
하나는 여신님이라는 호칭과 다른 하나는 존댓말이었다. 가끔 제가 잘못했을 때, 눈치 보면서 존댓말을 하는 걸 보면 개념은 제대로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왜인지 평소에는 꼭 이렇게 반말을 해온다. 몇 년이나 이렇게 듣다 보니 일일이 지적하는 것도 귀찮고, 이젠 별생각도 들지 않아서 존댓말에 대한 미련은 버렸지만 그래도, 저 여신이라는 호칭만은 틈틈이 지적하고 있었다. 엄마라는 호칭은 고쳤으면서 어째서.
“카라마츠. 나는 여신이 아니라니까요.”
하지만 그 지적에 대해선 카라마츠는 모르쇠였다.
“자주 움직여줘야 나처럼 크고 튼튼해진다.”
엉뚱한 소리에 쵸로마츠는 오늘도 한숨을 쉬며 성실히 이야기한다.
“아니, 난 깨어났을 때 이미 다 자랐고, 신이라서 딱히 튼튼해질 필요도 없고.”
“아, 그렇다면 걸어 다니는 게 힘들어서 그런가? 그런 거라면 이젠 나도 컸으니 등에 업을 수 있다!”
카라마츠는 고개를 갸웃했다. 여신에게도 카라마츠처럼 다리가 있다. 상황에 따라 카라마츠는 두 개일 때도, 네 개일 때도 있는 다리가 여신에게도 두 개가 있다. 저 나풀거리는 하얀 천자락 아래에 부드럽고 매끈매끈한 다리가 있는 것을 종종 목격했으니까. 아니, 다리가 없어도 튼튼한 자신이 있으니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여신은 항상 이 연못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저 카라마츠가 먹이를 찾아 산 아래로 내려갔다 오는 것을 자리에 서서 배웅하고, 여신의 작은 화원을 꾸밀 꽃 한 송이를 캐오면 역시나 저 자리에 서서 맞아주고. 항상 이 자리에 있다. 카라마츠가 이곳에서 처음 그를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래왔기에 그 사실에 대한 의문이 든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신이니까요.”
“응?”
“개울이 흐르고, 바람에 구름이 떠다니고, 계절에 따라 꽃이 피고 지는 것과 같이 전 이곳에 있어야 하니까요. 그게 세상에 좋으니까요.”
차분한 설명에도 멀뚱히 저를 쳐다보는 시선은 이해를 못 했음을 의미해서 쵸로마츠는 간단하게 설명했다.
“여기가 집이니까요.”
“나도 여기가 집이다. 쵸로마츠와 나. 우리 둘의 집 아닌가. 하지만 나는 저 멀리 산 너머에도 갈 수 있고, 저쪽 인간들 마을 근처에도 다녀올 수 있다.”
카라마츠의 말에 쵸로마츠는 멈칫했다. 카라마츠도 여기가 집?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그러고 보면 카라마츠는 항상 어디를 갔다가도 이곳으로 반드시 돌아왔다. 처음 카라마츠가 사라졌을 때는 드디어 떠난 건가?, 라고 생각했지만, 일주일 정도 후에 잔뜩 생채기가 난 몸으로 제게 돌아왔었다. 반 죽어가는 작은 쥐 한 마리를 입에 물고. 그 쥐는 제대로 치료해서 놔줬지만, 그 이후에도 계속 카라마츠는 쵸로마츠에게 줄 무언가를 꼭 챙겨서 돌아왔다. 가르침으로 선물은 꽃이나 열매 같은 것들로 바뀌었고 5년여가 지난 지금은 연못 주변이 색색의 꽃과 과실수들로 가득 찼다. 카라마츠는 선물을 준 후엔 몇 날 며칠이고 쵸로마츠에게 지난 며칠간 자신이 돌아다니며 본 것들을 이야기해 준다. 무엇을 봤고, 무엇을 들었으며,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그 이야기는 카라마츠가 이 연못가에 없던 날 수만큼 며칠이고 계속되고, 모든 이야깃거리가 떨어지면 카라마츠는 다시 배가 고프다며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또, 제 옆으로 돌아온다.
그렇다면 이곳이 집이라는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닌가. 쵸로마츠의 입가에 맺힌 미소가 더욱 깊어졌다. 우리 집. 너와 나의.
“-해서, 쵸로마츠도 나와 같이 가면 좋겠다.”
콧김을 뿜으며 제게 말하는 카라마츠를 따뜻한 눈으로 내려 보며 쵸로마츠는 그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 정도로 열성적으로 말하니 한 번쯤, 그와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예전이라면 고민할 것도 없이 훌쩍 다녀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성력이 충만하던 그때라면 일주일 정도는 성소를 떠나도 상관없을 테지만, 지금은 이곳을 떠나면….
“지금은 안 돼요.”
“지금은?”
“예전이라면 가능했지만, 지금은….”
“예전?”
“카라마츠. 난 지금도 좋아요.”
여행에서 돌아와 잔뜩 신이 난 얼굴로 이야기를 해주는 그대를 보는 것도 그때만큼이나 행복하니까. 하지만 카라마츠는 삼켜진 말이나 분위기를 눈치챌 만큼 아직 성숙하진 못했다. 몸만 큰 아이는 여신이 흘린 말을 놓치지 않고 끈질기게 물었다.
“여신님. 알려줘. 예전엔 어떻게 가능했지?”
“카라마츠.”
“여신님! 난 꼭 여신님과 함께 가고 싶다! 내가 데려올 수 없는 동물들도 함께 보고, 우리 머리 위에 흘러가는 같은 구름을 보고 같이 웃고 싶다!”
“그러니까 그건 불가능해요. 지금은 나를 따르는 이들도 없고, 이름도 잊힌 신이니까-”
“따르는 이들?”
“아, 그런 사람들을 신자라고 부르는데 자세히 설명하자면”
“그럼 내가 쵸로마츠의 신자라는 것을 만들면 되는 건가! 쵸로마츠의 이름을 알리면 되는 건가! 그럼 쵸로마츠는 나랑 함께 여행을 갈 수 있는 건가!”
“카라마츠?”
“기다려줘, 여신님! 내가 꼭 밖으로 데려갈 테니까!”
“카라마츠? 카라마츠! 거기, 서요! 카라마츠!”
카라마츠가 자리를 비울 때는 언제나처럼 잠이 드는 여신이 꾸는 꿈은 언제부턴가 그 내용이 변했다. 옛날의 기억을 반복하는 것이 아닌 여행을 떠나기 전, 카라마츠가 들려준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꿈을 꾸거나 이야기를 들려주는 카라마츠의 얼굴을 떠올리는 꿈을 꾸게 된 지 오래였다. 그것이면 충분한데. 나는 이곳에서 그대의 이야기를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쵸로마츠는 수풀 너머로 그가 사라진 곳을 한참 바라봤다. 불안했다. 신이면서 이런 마음이 가당키나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느꼈었던 불안감이다.
그래. 그때 산사태가 일어나기 전에 느꼈던 그 느낌.
“카라마츠. 돌아와요. 제발.”
쵸로마츠는 팔목의 잎사귀 팔찌를 만지며 멍하니 수풀 너머, 이미 산 아래를 향해 달리고 있을 그를 향해 중얼거렸다.
◇◆◇
카라마츠가 걸음 한 곳은 사냥이 힘들거나 어려울 때 식량 조달을 위해 몇 번 들렸던 마을이었다. 마지막으로 이 마을에 들렸던 것은 재작년 겨울이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언제부턴가 한 달 이상을 굶어도 배가 고프지 않게 돼서 식량 같은 것에 신경 쓰지 않고 쵸로마츠에게 들려줄 이야깃거리만을 찾아 좀 더 먼 곳으로 나가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꼬리와 귀를 없애는 완벽한 인간형으로 오랜만에 화하는 것으로 마을에 들어갈 준비는 끝냈지만…. 그래도 뭔가 미진한 마음이 들어 좀처럼 마을에 들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카라마츠는 제 몸을 슬쩍 내려 봤다. 여신에게 물어 배웠지만, 아직 완벽한 인간형은 장시간 변신하고 있기는 익숙하지 않고, 방심하면 꼬리나 귀가 툭 하고 튀어나와서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거기다, 애초에 인간들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라 인간 앞에 설 때 저도 모르게 긴장하며 신경이 분산되는 것도 문제다.
카라마츠는 오래전 구해놨던 낡은 로브를 만지작거리며 생각했다.
거래를 위해 아주 잠깐 들리는 것이 아니라면, 근처도 지나고 싶지 않은 인간 마을이지만.
-지금은 나를 따르는 이들도 없고, 이름도 잊힌 신이니까
그렇게 말하며 쓰게 웃는 그 얼굴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여신 스스로는 잘 모르겠지만 아주 가끔 그는 그렇게 웃는다. 혼자서 뭔가 삭이는 것처럼, 우는 방법을 몰라 우는 이처럼. 그때마다 카라마츠는 가시에 찔린 듯, 가슴 한구석이 따끔거렸다.
그건 분명히 계속 그곳에만 있어서 그럴 거야. 새로운 것을 발견하면 재미있는데. 슬플 틈 따위는 없는데! 쵸로마츠는 항상 그곳에만 있어서 그런 것을 모르니까.
신자, 그게 뭔지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쵸로마츠의 이름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따르게 하면 된다는 거지? 그럼 나처럼 쵸로마츠를 사람들이 좋아하게 만들면 되는 건가? 그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난 처음부터 쵸로마츠가 좋았는데. 쵸로마츠를 보여주면 될까?
카라마츠는 걷다 말고 다리 위에 멈춰 서서 생각에 잠겼다. 그때였다.
“어이, 거기 너.”
누군가 부르는 목소리에 카라마츠가 고개를 돌리니, 제법 덩치가 있는 남자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를 보고 있었다.
“응?”
“누구냐, 근방에선 못 보던 얼굴인데.”
카라마츠는 그 질문에 나도 이 마을에서 네 냄새는 처음 맡는 데, 라고 대꾸하려다 그건 좀 아닌가 싶어 적당히 대답했다.
“-여행 중이다.”
“이런 외지에?”
“이전에도 종종 들렸었다. 이번엔 잠깐 필요한 게 있어서 들린 것뿐이다.”
“정비인가. 작년 수확이 좋지 않다고 다들 앓는 소리를 해서 그쪽도 필요한 것들을 제대로 정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덩치도 큰 사람이 그렇게 다리 한가운데에 앉아있으면 다른 사람 다니는 데 불편하니까 마을로 들어오든지, 나가든지 해줘.”
“아, 미안하군.”
카라마츠는 자리에서 일어나 게걸음으로 자신을 지나쳐 걷는 남자의 뒤를 따라 걸다 자신의 사고로는 도저히 신자를 어떻게 만드는지 알 수가 없어서 그에게 물었다.
“저기.”
“응?”
“신자…는 어떻게 만들 수 있지?”
“응?”
남자는 카라마츠의 뜬금없는 질문에 그를 위아래를 훑어봤다.
“사제님이신가? 아니, 그런 차림은 아닌데.”
“사제?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아니다.”
“사제도 아닌 사람이 그런 걸 왜 묻는지는 모르겠지만, 신전을 짓고, 포교활동을 하고 뭐 그러면 되는 것 아닌가?”
“신전? 포교활동? 쵸로마츠는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았는데.”
“…쵸로마츠? 그건 뭐야? 저기, 이봐. 너 뭐 하는 녀석이야? 여행객 맞아? 지금 보니 여행하는 사람치곤 짐이 너무 단출한데?”
카라마츠를 보는 남자의 표정에 의심이 어린다.
“어디 사람이지? 요즘 같은 시기에 다른 나라 사람들은 국경을 넘기 쉽지 않은데. 여행자 신분증 좀 보여”
“-그럼 이만 실례하겠다.”
“어이!”
카라마츠는 남자가 저를 추궁하기 시작하자 급히 인사하곤 마을 안을 향해 달렸다. 남자는 빠르게 멀어지는 카라마츠의 뒤를 쫓으려다 그대로 멈춰 섰다. 그리고 그의 시야에서 카라마츠가 사라질 때까지 빤히 그 뒷모습을 지켜보던 남자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급한 걸음으로 자리에서 벗어났다. 자리를 떠나는 남자의 눈은 좀 전까지 없던 기이한 욕망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
카라마츠가 마을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봐도 돌아오는 것은 의아한 눈초리 혹은 처음 만난 사람과 같은 신분증 요구였다. 얼버무리며 자리를 떠나는 것을 수차례 반복하다 보니 이젠 자리를 피하는 요령까지 생길 정도였다. 하지만 이래서는 쵸로마츠와 여행을 할 수 없어! 지쳐버린 카라마츠는 머리를 감싸 쥐고 인적 드문 골목길에 주저앉았다. 피곤이 몰려왔다. 기세 좋게 소리치고 나온 것에 비해선, 아무 성과가 없다.
신자가 무엇인지, 어떻게 만드는 건지 쵸로마츠에게 제대로 물어보고 왔어야 했나. 그냥 인간 마을에 오면 어떻게든 될 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자신이 사냥한 동물들의 털가죽을 식량이나 필요한 물건들로 교환할 때는 그렇게나 친절하던 사람들이 질문 하나에 이렇게나 도끼눈을 하며 달려들 줄은.
도대체 신자가 뭔데? 인간들한테는 위험한 건가?
등 뒤에서 자신을 부르던 여신의 목소리를 괜히 못 들은 척했다고 작게 후회하며 카라마츠는 제 손목을 감싸고 있는 녹색 잎사귀 팔찌를 쓰다듬었다. 일 년 전, 쵸로마츠가 선물로 준 소중한 팔찌였다. 카라마츠가 구해온 꽃이나 나무에서 가끔 떨어지는 잎사귀들을 그러모아 덩굴로 엮어 만든 팔찌는 신기하게도 물을 주지 않아도 시들지 않았고, 일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싱그러움을 유지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지는 카라마츠로서는 알 수 없지만, 카라마츠는 이 팔찌가 좋았다. 이것과 똑같은 것을 하고 있는 쵸로마츠가 지금도 제 옆에 있는 것만 같아서.
“쵸로마츠….”
잎사귀에 입 맞추며 그 이름을 부르니 그리움이 더욱 커졌다.
그래, 오늘은 돌아가자. 이 이상 이 마을에 돌아 다녀봤자, 이상하다고 낙인 찍혀서 도망 다니는 게 고작인 것 같고. 돌아가서 쵸로마츠에게 제대로 물어보고 내일 다른 마을에 가보자.
카라마츠는 그렇게 결심하고 몸을 돌렸다.
“아, 찾았다!”
“어디야!”
어?
마을에 들어서기 전, 다리에서 만났던 남자가 골목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는 카라마츠를 보자 목청껏 누군가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에 골목 밖에서 부산스러움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
기시감이 느껴졌다.
-들켰다!
-전부 쫓아!
멀리서 보이던 손에 쇠붙이를 들고 있던 낯선 사람들, 제 몸을 끌어안고 달리던 잔뜩 굳은 아빠의 얼굴, 길바닥에 쓰러져있던-점점 멀어지던 엄마의 모습.
카라마츠가 몸을 굳히는 사이 그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온 남자가 누런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카라마츠가 머리에 뒤집어쓰고 있던 로브의 후드를 젖혀버린다. 종일 저를 의심하는 사람들을 피해 달려 다니느라 잠시 신경 쓰지 못한 사이 비죽 튀어나와 있던 짐승의 귀가 그 머리에서 흔들리는 것을 본 남자가 한 번 더 외친다.
“수인이다! 호랑이!”
“잡아!”
“호랑이는 비싸다고!”
카라마츠가 굳은 눈으로 남자를 쳐다봤다. 남자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역시, 아까 로브 사이로 보이던 게 꼬리가 맞았어. 눈이 보배라니까!”
입술을 잘근 깨문 카라마츠는 제 후드를 잡고 있는 남자의 손을 전력으로 쳐냈다. 불시의 공격에 남자는 로브를 놓쳤고, 카라마츠는 그대로 몸을 돌려 남자의 반대 방향으로 달리려 했다.
“어딜!”
하지만 돈독이 잔뜩 오른 남자는 재빨리 손을 뻗어 끈질기게도 펄럭이는 로브 자락을 움켜쥐었다. 카라마츠는 목을 졸라오는 로브의 당김에 이를 까득 갈며 망설임 없이 인간형에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성인 남성 둘은 훌쩍 뛰어넘는 덩치의 호랑이로 순식간에 변한 카라마츠 탓에 몸에 걸치고 있던 옷은 엉망으로 찢어졌고, 갑작스러운 변신에 놀란 남자는 잡고 있던 로브를 그만 놓쳐버렸다. 여차하면 남자를 달고 달릴 생각이던 카라마츠는 홀가분해진 목덜미를 느끼며 틈을 놓치지 않고 재빨리 도약했다.
“잡아!”
멀어지는 카라마츠의 등을 보며 남자가 외쳤다. 이 골목을 향해 달려오는 인기척들이 분주하게 흩어지는 것을 느끼며 카라마츠는 달리고, 또 달렸다.
“호랑이!”
“꺄악!”
대로변에 나간 카라마츠는 사람들의 비명을 스치며 온 힘을 다해 달렸다. 사람들의 소란스러움이 때때로 진로를 방해했지만, 그것들을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날렵함으로 피하며 카라마츠는 쏜살같이 마을 입구를 향해 달렸다. 마을 밖으로! 집으로! 카라마츠의 머릿속엔 오직 그 생각뿐이었다.
“!! 크아앙!”
생경한 통증이 돌연 뒷다리에서 느껴졌다. 통증 탓에 꼬여버린 보폭에 발을 헛디딘 카라마츠는 그대로 허공에 떠올랐다. 그는 몸이 뒤집히는 순간 제 다리에 꽂혀있는 굵은 나무 막대를 볼 수 있었다.
이게, 뭐-.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기도 전에 카라마츠의 커다란 몸은 엉망으로 바닥에 처박혔고, 바닥에 머리를 세게 박아 시야가 흔들리는 차, 이번엔 배에 좀 전의 몇 배는 되는 고통이 느껴졌다.
아.
고개를 들어 보니, 검갈색의 굵은 꼬챙이가 배에 이질적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 자신의 하얀 털이 서서히 붉게 물들고 있었다.
“어떤 새끼야! 어떤 새끼가 자벨린을 날렸어!”
“죽일 일 있어?!”
“하, 하지만 호랑이!”
“호랑이가 아니라 호랑이 수인이라고! 아, 제기랄, 수인 시체는 요즘 유행이 지나서 팔기도 힘들고 제값 받기도 힘들어진다고! 인근에 시체 보관소나 박제할 수 있는 사람도 없고!”
“젠장, 의사 없어?! 의사 데려와!”
흐릿해지려는 정신을 남자들의 사나운 목소리가 일깨운다.
팔아? 나를? 시체? 박제? 그게 뭐야?
생경한 단어들이 카라마츠의 머리를 헤집는다. 끔찍한 느낌의 단어들은 하나로 연결이 되어 잊고 있던 언젠가의 기억을 툭, 건드려 깨웠다.
바닥에 쓰러져 있던 엄마, 엄마를 데리러 가서 돌아오지 않은 아빠, 엉망이 됐던 집.
“크르르-.”
카라마츠는 배에 꽂힌 나무 꼬챙이가 거치적거려 튀어나온 부분을 앞발로 눌러 부러뜨리고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카라마츠를 향해 달려오던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자리에서 우뚝 멈춰 섰다. 카라마츠의 눈이 분노와 증오로 일렁이는 것을 정면에서 마주한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껴 한발 주춤 뒤로 물러섰으나, 그중 한 무리는 눈을 빛내며 오히려 멈췄던 발을 움직여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카라마츠를 처음 만났던 그 남자가 속한 무리였다. 손에 그물이며 날이 번쩍이는 흉흉한 무기들을 들고 있는 남자들의 눈에는 두려움이 없었다. 탐욕으로 번들거리는 눈을 가진 그들은 전문적인 사냥꾼 무리였다.
“잠깐만 버티면 쓰러지겠어.”
카라마츠의 몸에 꽂힌 꼬챙이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살피며 한 남자가 중얼거린다.
“몸이 튼튼한 호랑이라 다행이야. 깨끗하면 더 비싸긴 하지만 그래도 몸에 저 정도 상처가 있어도 숨만 붙어있으면 비싸니까 죽이지만 않으면 돼.”
“하지만 암컷이 아닌 건 조금 아쉬운데. 몇 년 전이더라, 어이, 유타. 네가 발견했던 그 암컷 엄청 비싸게 팔렸잖아?”
“아, 그랬었지. 암컷은 희귀한데 설마 종종 마을에 일하러 오던 반반한 계집이 수인이었을 줄이야. 오래 쉬어서 돈이 궁하던 차에 횡재했었지. 그냥 길바닥에 굴러다니던 금덩어리를 주운 거라 덕분에 또 몇 년 편하게 놀았어.”
“맞아. 거기다 그 년 구한다고 도망갔던 수컷도 돌아와서 제법 벌이가 쏠쏠했지. 비록, 그건 시체가 돼버렸지만 생긴 건 훌륭해서 비쌌다고?”
“멍청한 짐승이 주제도 모르고 영웅 행세하다 뒈진 거지. 인간도 아닌 게 감히 어디라고.”
남자들이 시시덕거리며 떠드는 소리가 여과 없이 카라마츠의 귀로 쏟아졌다.
“그것들 새끼도 있던 것 같은데, 그걸 못 잡아서 아쉬웠지. 새끼는 암컷보다 더 비싼데.”
“아, 혹시 저게 그거 아니야?”
“아, 그런가.”
“오, 그럴 수도 있겠네. 그것들이 살던 곳은 제법 떨어져 있지만 근방에서 호랑이 흔적은 거기뿐이었고. 어이, 너! 네가 그것들 새끼냐?”
“크크큭, 이봐. 뭐야 그게.”
“아, 못 알아들으려나? 하지만 아까 제대로 대화는 했었는데.”
죽인다.
한 가닥 남아있던 이성이 끊어지며 카라마츠는 남자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다리의 통증도, 배의 통증도 넘치는 분노 앞에선 그 어떤 장애도 되지 못했다. 피하는 남자에게 앞발을 휘두르고, 저를 향해 찔러오는 꼬챙이를 피하며 발톱을 세워 찍는다. 제 몸을 사리지 않는 카라마츠의 기세가 매우 사나워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사람들 중엔 힘이 풀려 자리에 주저앉아버린 사람까지 있었다. 반쯤 미쳐 날뛰는 카라마츠와 그것을 포획하려는 욕심 가득한 남자들로 거리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리고 카라마츠의 앞발에 걸쳐진 녹색의 잎사귀가 그의 몸 곳곳에 생기고 있는 생채기로 붉은빛으로 천천히 젖어갔다. 카라마츠는 본능과 증오가 이끄는 대로 거세게 날뛸수록 제 몸에서 피가 급속도로 빠져나가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저 제 시야를 어지럽히는 남자 중에서도 딱 한 명, 유타라고 불린 처음의 남자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적어도 저놈, 저 한 놈이라도!
몇 번의 공방 후, 남자들은 그것을 깨달았는지 자기들끼리 재빨리 신호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일부로 틈을 만들어 카라마츠가 유타에게 달려들게 하였다. 그리고 그 유도대로 카라마츠가 유타에게 달려들어 목을 물어뜯으려는 순간 사방에서 일제히 달려들어 각자의 손에 들고 있던 무기를 휘둘렀고, 그중 두 명은 준비하고 있던 마취제가 담긴 주사기를 카라마츠의 몸에 찔러 넣었다. 거대한 코끼리도 맞는 순간 기절할 정도의 강한 약이었기에 그것들이 몸에 들어가는 순간, 카라마츠는 그대로 자리에 고꾸라졌다.
“아, 죽는 줄 알았네.”
“안 죽었으니 됐지.”
“미끼 수당은 확실히 쳐줘.”
“어. 그보다 의사, 아직이야? 이거 죽을지도 몰라?”
남자들의 징그러운 목소리가 꿈결처럼 아련하게 들린다. 통증도, 다른 감각도 마치 잠들기 직전처럼 어긋나 정신이 붕 뜨는 기분이 들었다. 데굴 눈을 굴리니 제 앞발이 두 개, 세 개로 늘어나더니 흐릿하게 시야를 어지럽힌다. 그렇지만 그런데도 쵸로마츠의 선물만은 선명하게 눈에 박힌다. 붉게 물들어 축 늘어진 잎사귀 위로 쓸쓸하게 웃던 여신의 얼굴이 떠오른다. 엄마, 아빠의 얼굴보다도 저를 보던 여신의 얼굴이 더욱 선명하게 떠오른다. 제 등 뒤에서 저를 부르던 그 목소리가 너무나 생생하다.
그리고 돌연 후회가 밀려온다. 돌아가야 하는데. 그 옆으로.
쵸로마츠….
카라마츠의 눈이 천천히 감기고, 그의 피를 먹어 뭉그러져 녹아내리던 팔찌에서 검게 죽어버린 잎사귀 하나가 툭, 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그곳에 냉엄함을 몸에 두른 여신이 강림했다. 피투성이의 거대한 호랑이를 허공에 띄워 품에 안아 든 여신은 어리석은 자들에게 고했다.
“여신 쵸로마츠의 이름으로 나의 유일한 지팡이를 해한 그대들에게 신벌을.”
◇◆◇
카라마츠는 천천히 눈을 떴다. 익숙한 정경이 눈에 들어왔다. 밤바람에 산들산들 흔들리는 꽃물결. 구름 한 점 가림 없이 머리 위에서 빛나는 달과 그 달을 오롯이 담고 있는 작은 못. 그리고 그 앞에 고고히 서 있는 나의 여신.
“…쵸로마츠?”
“아, 일어났어요, 카라마츠?”
제 목소리에 빙글 몸을 돌리는 여신의 모습에 카라마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에게 달려갔다.
“쵸로마츠!”
“으앗!”
카라마츠의 힘을 못 이긴 쵸로마츠가 뒤로 자빠졌다. 촘촘하게 자란 풀잎들 덕분에 통증은 없었지만 당혹스럽기는 해서, 쵸로마츠는 제 허리를 꼭 끌어안고 있는 카라마츠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다 문득, 그의 어깨가 잘게 떨리고 있는 것이 보여 조심스럽게 머리에 손을 올렸다. 동그란 동물의 귀가 움찔 떨리는 것이 보였다.
“카라마츠….”
“…….”
“그래도, 그대가 내가 잠들기 전에 일어나서 다행입니다.”
“…쵸로마츠?”
의미심장한 말에 카라마츠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쵸로마츠는 불안으로 얼룩진 그의 얼굴을 다정히 어루만졌다.
“카라마츠, 난 조금 오래 자야 할 것 같아요.”
“왜? 얼마나?”
“그건….”
“나 때문에? 어렴풋이 기억한다. 앞이 캄캄해지는 데 쵸로마츠의 목소리가 들렸고, 몸이 따뜻해졌다. 왔던 거지, 쵸로마츠? 내가 있던 곳에? 그래서 그런 거지?”
난처하게 웃는 쵸로마츠의 얼굴에 카라마츠는 다급히 물었다.
“얼마나 자야 하는 건가? 하루, 이틀? 아니 조금 오래라고 했으니까 일주일? 열흘? 설마 한 달? 괜찮다, 그 정도는 난 기다릴 수 있어!”
기간을 늘리고, 늘려도 쵸로마츠는 그저 웃을 뿐 대답이 없었다.
“쵸로마츠! 제발!”
카라마츠는 저를 두고 자리에서 일어나 못을 향해 천천히 뒷걸음질 치는 그를 불렀다. 쵸로마츠는 당장에라도 달려들어 저를 붙잡을 것 같은 카라마츠를 향해 손을 들어 그를 멈춰 세웠다. 순식간에 자라나 제 발을 억세게 잡고 있는 풀들은 카라마츠 자신이 쵸로마츠를 위해 데려온 것들이었기에 힘을 주면 충분히 벗어날 수 있었음에도 그는 여신의 뜻대로 자리에서 멈춰 섰다. 쵸로마츠가 버림받은 아이의 얼굴을 한 카라마츠를 보고 웃으며 말한다.
“여행을, 다녀오세요. 조금 먼 곳으로.”
언제나처럼 평범하게, 담담하게, 차근차근.
“다녀와서 내게 알려줘요. 다른 곳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디에서 피는 꽃이 가장 예쁜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지저귀는 새는 어디에서 사는지 그대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돌아와서 알려줘요.”
쵸로마츠는 못 위에 섰다. 쏟아지는 달빛 아래에서 여신이 말한다.
“그리고 다음에는 그곳에 절 데리고 가줘요. 카라마츠, 그대가 찾아낸 그곳으로 우리 같이 여행을 가요.”
녹아들듯, 못 아래로 서서히 가라앉는 여신을 바라보며 카라마츠가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알겠다. 쵸로마츠!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어디에 피는 꽃이 가장 예쁜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지저귀는 새는 어디에서 사는지! 내가, 내가 꼭 보고 올 테니까! 보고 와서 알려줄 테니까!”
완전히 못에 잠긴 여신에게 카라마츠가 힘껏 외쳤다.
“꼭 같이 여행 가는 거다! 쵸로마츠!”
목소리를 들은 것인지 아래로 가라앉으며 천천히 눈을 감는 쵸로마츠의 얼굴에 설핏 미소가 어리는 것이 보였다. 카라마츠는 그를 향해 얼굴을 타고 흐르는 눈물과 콧물을 무시하며 환하게 웃어줬다.
◇◆◇
-잔악하며 오만한 인간들에게 신벌이 내려졌다.
-신은 분명히 존재했다.
-여신의 명으로 수인들을 사냥하는 것은 불법.
-찬양하라, 수인들의 여신.
-성스러운 그 이름은 쵸로마츠.
◇◆◇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 어느 여신에 대한 이야기는 퍼져나가 한 나라, 한 대륙, 그리고 그 너머까지 퍼져나갔다. 그리고 이윽고 모든 대륙에 그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을 때, 그는 그들의 집으로 돌아왔다. 늘 그랬듯, 이야깃거리와 선물을 한가득 짊어지고.
“…다녀왔다.”
그리고 늘 그 자리에 존재하는 이가 환하게 웃으며 그에게 늘 그랬듯, 말했다.
“어서 와요, 카라마츠. 자, 오늘도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