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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숨을 내뱉던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

 

 

 

그가 깨어나 처음 본 것은 ㅡ 카라마츠는 잠시 생각을 멈췄다. 적당한 단어를 찾아야만 했다. ㅡ 기다란 관이었다. 양수와도 같이 끈적하고 따뜻한 액체가 제 몸을 감싸고 있었다. 카라마츠의 의식은 흐릿했으나, 반쯤 감긴 시야 사이로 기포들이 보글보글 올라가는 것은 확실히 보였다.

투명한 원형들. 그리고 기포들의 수 만큼이나 많은 눈동자들.

 

 

 

실험체, 성공. 어지러운 소음들이 귓가에 메아리쳤다. 카라마츠의 귀는 인간의 그것과 달랐으며, 때문에 선명하게 그 소리를 걸러낼 수 있었다. 늘어진 귀가 파동에 반응해 쫑긋였다. 아주 기이하고 섬세한 청각기관은 카라마츠가 처음 눈을 뜬 순간에 이미 완벽하게 형성되어 있었다. 극치에 이른 기술이란 그런 것이다. 때문에 과학자들은 환호했다. 저희들이 탄생시킨 가장 인간에 가까운 생명체를 목전에 두고, 하나의 종교로 자리잡은

이의 호칭을 불렀다.

 

 

"박사님! 저희가 성공했습니다! 드디어 인간을 만들어냈어요!"

 

 

 

그 시점에서 카라마츠는 이미 많은 언어를 알아냈다. 실험체. 성공. 박사님. 저희. 드디어. 인간. 그러나 카라마츠가 제일 처음으로 내뱉은,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옹알이라고 했을 단어는 어디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것이었다. 본능적으로 목울대를 움직이면서도 낯설었다. 하지만 옳은 것 같았다. 자신은 이를 위해 태어난 것 같았고, 결과적으로 틀린 추측은 아니었다.

 

 

"아버지."

 

 

사람들의 시선이 경이로 젖어들었다. 카라마츠는 그곳에 있는 모든 이와 시선을 마주쳤다. 손을 벌벌 떠는 이. 헛소리를 중얼거리는 이. 감격해 눈물을 흘리는 이. 마지막으로는, '박사님' 이자 자신의 '아버지' 인 이.

 

 

기억하고 있다.

 

 

 

첫 숨을 내뱉던 순간을. 처음 자신의 창조주와 눈을 마주쳤던 순간을. 그래. 어쩌면 처음부터 직감했던 걸지도 모른다. 노인의 희끗한 눈동자는 한자락의 공포 속에서 일렁이고 있었으므로.

 

 

 

아득한 기억을 되짚으며, 카라마츠는 나릿하게 숱 많은 속눈썹을 내려앉혔다. 세상과 동떨어진 공간은 적막했으며, 뼈에 사무치도록 시렸다. 죽음이 그곳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들의 마지막 요람] (젖소카라/토라카라)

 

 

 

 

욕망으로 바벨탑을 쌓으려는 인간들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다. 하늘 끝에 닿고 싶다! 헛된 바람 하나가 무한한 동력이 되었다. 탑을 한 층, 계단을 하나 쌓아올릴수록 문명은 발달했다.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한다. 인류 이외의 짐승을 지배한다. 자연을 손익에 따라 변화시킨다. 어느 시점부터 바꿀 수 없으리라고 믿었던 수명이 길어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누군가가 금기의 영역에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우리가 생명을, 인간을 탄생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최종적인 목적은 언제나 신의 권위였다. 탑은 가속도를 붙여 점점 높아져 갔다. 수많은 사람들이 계단을 올라가다 좌절했다. 그리고, '박사님'은 그 좌절의 끝에 오롯이 선 자였다.

 

 

남자는 천재라 일컬어지며 각광받았다. 그의 손에서 많은 생명체들이 변형되었고 태어났다. 종을 혼합한 인간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 그에게는 있었고, 그 기술을 바탕으로 삼아 이제는 완벽한 인간이 태어날 차례였다. 그라면 가능한 일이었다. 바벨탑의 마지막 계단이 눈앞에서 형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공포 또한 경이와 비슷하게 사람들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잠식에 승리한 것은 공포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반기를 들고 나섰다. 박사의 모든 연구가 처분을 선고받고, 그는 탑의 꼭대기에서 떠밀려 거꾸라졌다. 그러나 박사는 죽지 않았다. 세상의 비주류에 속하는, 경이에 잠식된 이들은 비밀리에 다시 박사를 꼭대기까지 올리려 했다. 소수의 인원이 박사의 연구에 동참했다. 그들은 어떠한 광기에 사로잡힌 채로 실험을 계속해나갔다.

 

 

 

마츠노 카라마츠.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그 이름은, 성공이 다르게 불리는 방식이었다. 

 

 

 

"카라마츠."

 

 

 

성공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많은 플라스크가 정신없이 반짝이며 그의 시선을 앗아갔다. 침통한 목소리에 담긴 꺼림칙한 느낌은 호기심 앞에서 묵살되었다. 카라마츠는 처음 생긴 단둘만의 대면에도 도통 집중하지 못했다. 박사의 말이 끝나자마자 저건 무엇이고, 저건 무엇인지 잔뜩 물어볼 생각만 가득이었다.

 

그는 갓 태어난 아기처럼 모든 것에 흥미로움을 느꼈다. 크고 선량한 눈망울에는 빛이 사라질 날이 없었다. 연구원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최고의 걸작에 모든 성의를 베풀었다. 며칠이 지나고 실험에서 어떤 오류도 발견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떨쳐내지 못했던 공포를 비웃으러 성공과 바깥으로 나갈 계획이었다. 카라마츠 또한 하루하루 그것을 고대했다. 세상에는 흥미로운 게 잔뜩이었다. 귀띔으로 흘려들은 바깥. 태양이란 무엇일까. 나무는, 풀은. 바다란 어떤 느낌일까.

 

 

 

"나는 실험을 중단할 계획이다."

 

 

 

모두가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단 한 사람. 박사를 제외하자면 그랬다. 때문에 카라마츠는, 그의 말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보통의 인간보다 뛰어난 지능을 가진 생명체임에도.

 

 

 

"우리는 금기에 발을 들였어..."

 

 

박사의 말은 한숨처럼 흩어졌다. 카라마츠는 간신히 말라붙은 입술을 달싹였다. 아버지. 아버지.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아버지! 하고 싶은 말은 많았으나, 어느 하나도 소리가 되지는 못했다. 절대자의 말은 사형선고가 되어 그의 입을 거칠게 막아버렸다. 그게, 끝이었다.

 

 

 

끝이었다.

 

 

 

 

그는 많은 것을 알지 못했다. 태양이란 무엇인지. 나무란, 풀이란, 바다란 무엇인지. 어째서 자신이 '폐기처분'이라고 써진 문패가 붙은 방에 홀로 있어야 하는지. 왜 아버지는 자신을 버렸는지. 그 두려움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결코, 카라마츠가 그것을 알게 되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시간은 아주 빠르게 지나갔다. 두꺼운 철문 밖에서는 고성이 자주 오갔다. 뛰어난 청력으로도 겨우 들어냈으니, 실은 훨씬 먼 곳에서 나는 소리일 것이었다. 그러는 동안 카라마츠가 있는 방에는 누구도 오지 않았다. 배가 고프고 목이 말랐다. 보통의 인간보다 월등한 신체능력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한계는 있는 법이었다. 누군가 몰래 갖다주는 듯 비정기적으로 적은 양의 물이 들어왔다. 그러나 카라마츠는 그를 멀리 치워놓고 입에 대지도 않았다.

 

 

방은 어두웠다. 낮에도 사위를 분간할 수 있을 정도로만 밝아질 뿐이었다. 카라마츠는 많은 시간을 웅크려 지냈다. 그의 귀는 축 처졌으며, 관리를 해주지 않은 가슴은 붉게 부풀었다. 그렇게 며칠을 지냈을까.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가 꿈도 꾸지 못하고 불편한 잠에 취해 있을 때였다.

 

 

 

 

"비었는데. 여기에다... 넣으면 되는 겁니까?"

 

 

 

"어차피 폐기할 거니까 두고 나와."

 

 

무어라 반응할 틈도 없이 문은 다시 닫혔지만, 카라마츠는 털썩, 하고 물기가 마찰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문틈으로 스며들어온 빛에 동공이 수축하는 걸 느꼈다.

 

 

 

방 정중앙으로 던져진 것은, 틀림없는 생명체였다. 아주 작고. 미동도 없는.

 

 

 

 

*

 

 

 

 

"......"

 

 

 

처음으로 제 감각을 의심해봤다. 카라마츠는 눈을 몇 번 감았다 떴다. 카라마츠의 반응은 마치 낯선 장난감을 처음으로 본 소동물 같았다. 우선적으로 경계를 한다. 탐색을 한다. 위협이 되지 않음을 알고 나서야 다가간다. 카라마츠는 그 과정을 아주 천천히 거쳤다. 생명체는 아주 작고, 작고... 살아 있었다. 미동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자그마한 가슴팍이 느리게나마 부풀었다 가라앉았다.

 

 

카라마츠는 고민했다. 무엇 때문에 고민하는지 스스로조차 몰라도, 어쨌든 고민하다가, 곧 부질없음을 깨닫고 고개를 저었다. 문이 닫히기 전에 연구원들이 한 말을 떠올렸다. 마찬가지로 저와 비슷하게 폐기될 처지에 갇힌 실험체이리라. 그렇게 생각해보니 과연 일리가 있었다. 카라마츠는 아주 오랜만에 몸을 반쯤이나마 일으켜 생명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차갑고 축축했다. 조심스럽게 품에 안아올렸다.

 

 

 

"...차갑군."

 

 

그것 이외로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쟈가."

 

 

 

카라마츠는 고개를 한 번 갸웃하고, 뻣뻣하게 굳은 기분이 드는 혀를 다시 굴렸다.

 

 

 

"작아."

 

 

 

이제야 발음이 비슷하다. 옮아붙는 냉기에 진저리를 치며 원래 앉아 있던 구석자리로 향했다. 혹시라도 충격이 갈까봐 엉거주춤한 자세로 앉았다. 오랜만에 움직인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카라마츠는 의식적으로 숨을 작게 쉬었다. 금방이라도 죽어버릴 것처럼 품안의 생명체는 여렸고... 척 봐도 미완성작으로 보였다.

 

 

 

카라마츠가 성장하던 도중 시험관에서 쫓겨났다면 그 또한 이런 모습이었음이 틀림없다. 인위적으로 탄생한 몸은 성장이 빠른 대신에 많은 영양분을 필요로 했다. 겨우 팔뚝 만큼의 크기로 자란 몸은 곧 죽으리라고 쉽사리 예상이 갔다. 연구원들도 그렇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러나 카라마츠는, 이번에는 의미 없는 고민을 하지 않았다. 대신 가슴팍까지 올라오는 옷을 억지로 잡아당겼다. 좋은 재질이 아닌 천에 상반신 전체가 쓸리자 통증이 느껴졌다.

 

 

드러난 상체에는 다른 부위에 비해 살이 제법 통통하게 붙어 있었다. 가슴에 있는 몽우리는 남자의 것이라기엔 지나치게 괴리감이 들었고, 여체의 것이라고 해도 큰 편이었다. 카라마츠는 연구의 목적을 충실하게 반영한 실험체였다. 완벽한 인간을 만들어내기 바로 전의 단계. 반인반수. 그중에서도 카라마츠는 젖소와 인간의 혼합종이었다. 젖소의 특성 대부분이 그에게 유전되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카라마츠는 요 며칠 심한 젖몸살을 앓고 있었다. 지속적인 연구원의 관리가 사라지자 가슴이 붉게 부풀었다. 혈관이 몰려 성이 난 끝에는 이미 묽은 유즙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자신이 착유하는 방법을 모르지는 않았지만, 박사의 처분이 내려진 이래로 카라마츠는 어떠한 행동도 의욕적으로 해본 일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카라마츠는 무릎 위에 작은 생명체를 바르게 눕혔다. 의식이 없는 몸의 자세를 고쳐주는 과정은 상당한 번거로움을 수반했다. 통증과 불편함으로 식은땀이 흐를 정도였다. 그랬기에 카라마츠는 모든 준비가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깊은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카라마츠는 작은 생명체의 입을 벌리고 상체를 숙였다. 작은 입안에 난 날카로운 송곳니가 그의 유방에 스쳤다. 절로 인상이 쓰여졌다. 벌려진 입으로 우유를 짜넣으며, 카라마츠는 문득 스치는 설움과 피로에 코를 몇 번 훌쩍였다. 울음을 삼킬 때마다 유즙이 뚝뚝 떨어졌다. 차갑게 식었던 몸이 온기를 찾는 것을 느낀다. 그 뒤로 얼마 지나지 않아 카라마츠의 의식은 까무룩 암전했다.

 

 

 

 

 

*

 

 

 

 

희미한 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 라기엔 목구멍의 갸릉거림 같은, 의미 없는 공기의 진동이었다. 늘어져 있던 카라마츠의 귀가 쫑긋였다. 캬웅? 갸웅? 눈이 퉁퉁 부어 쉽사리 열리지 않았다. 파리를 쫓듯 고개를 젓자니 곧 무엇인가가 코를 통통 두드렸다. 카라마츠는 그제서야 힘겹게 눈을 떴다.

 

 

 

"캬웅."

 

 

 

 

여태껏 보지 못한 얼굴이 그의 바로 앞에 있었다. 카라마츠는 소스라치게 놀라 몸을 일으켰다. 배 위에 올라와 있던 생명체도 옆으로 황급히 뛰어내렸다.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꽉 움켜쥐고, 카라마츠는 그 생명체를 조심스럽게 살펴보았다. 그제서야 같은 처지의 실험체를 품에 안고 젖을 물렸던, 어제의 기억이 생각났다. 빳빳하게 섰던 귀의 털이 안정을 찾았다.

 

 

 

"좋은 아침... 이다?"

 

 

 

"캬우웅."

 

해석할 수 없는 울음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카라마츠는 다시 한 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연구소의 사람들 외에는 보지 못한 카라마츠에게는 당혹스러운 경험이었지만, 그만큼 자신이 무지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납득은 빨랐다. 설령 그게 갈색과 노란색의 머리카락... 체모가 전신에 나 있는 몸통을 하고 있더라도.

 

 

 

"아. 말을 못하는 건가?"

 

 

"캬웅."

 

 

 

털. 털이라고 하면 적절할 것이다. 맞는 표현을 찾는 데에 신경을 썼기 때문에 그 생물체가 고개를 끄덕였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알아들을 수는 있고?"

 

 

"캬오!"

 

 

 

카라마츠는 반신반의하며 한 질문에 짤막한 꼬리가 맹렬하게 흔들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카라마츠에게도 꼬리는 있었으나, 반쯤 퇴화된 상태라 저렇게 움직이지는 않았다. 인간의 형태로 완성되기 전에는 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답을 줄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곧 조금 더 생산적인 방향으로 사고를 돌리기로 했다.

 

 

"네 이름을 알고 싶군. 이름이 있나?"

 

 

생명체는 조금 고민하는가 싶더니 고개를 끄덕이머 울었다. 긍정의 대답이었다. 여전히 대화를 나눌 수는 없었지만, 이름을 알아낼 방법은 떠올랐다. 

 

 

 

"아, 카, 사, 타."

 

 

 

 자그맣지만 제대로 귀까지 있다. 그 위에 물음표가 뜬 것 같아, 카라마츠는 웃음을 띠었다. 네 이름이 들리면 신호를 보내다오. 느린 말이 끝나자마자 생명체는 다시 한 번 힘차게 울었다. 꼬리가 여전히 맹렬히 흔들리고 있었다. 

 

 

몇십 개의 음절을 참을성 넘치게 발음한 결과, 카라마츠는 단어 하나를 주워담을 수 있었다. 토, 라. 토라. 소리가 통통 이빨 사이로 튀어다녔다. 뜻을 모름에도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토라. 부드러운 털을 쓰다듬으면, 토라는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만족스러운 소리를 냈다. 

 

 

"나는 마츠노 카라마츠라고 한다."

 

 

 

성공의 다른 뜻이지. 그러나 쓰인 글자와도 같게, 이제는 텅 빈 이름이었다. 카라마츠는 뒷말을 꿀꺽 삼켜버리고 토라의 목덜미 쪽 털을 쓰다듬었다. 노란색이라고 생각한 토라의 털은 실제로는 더 밝았다. 물기가 완벽하게 마르자 카라마츠가 만들어낸 손자국을 따라 윤기가 흘렀다. 햇살 아래라면 더 옅어질지도 모른다. 빛을 받아 반짝이면, 그 색은 무어라고 하는 걸까.

 

 

 

 

침묵 속에서 상념은 쉽게 꼬리를 물었다. 그것이 문밖으로 나가는 일은 없었다. 좁은 공간 속에서만 맴돌며 카라마츠를 괴롭게 했다. 어떤 절대적인 사슬이 그의 발을 묶어두고 있었다. 밖으로 나가는 것. 살아가는 것. 아버지는, 어느 무엇도 허락하시지 않을 것이다. 카라마츠는 토라의 털을 오랜 시간동안 쓰다듬었다. 다행스럽게도, 미적지근한 온기는 그의 생각보다 꽤나 커다란 위안이 되어주었다.

 

 

 

*

 

 

 

 

둘은 그 뒤로 많은 시간을 함께했다. 비록 강제적으로 처분된 이상 서로의 의지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괜찮은 한때였다. 적어도 혼자 어두운 밤을 지새우는 것보다는 나았다. 한줌 남은 온기. 알게 모르게 애정에 굶주려 있던 카라마츠에게는 그것이 좋은 작용을 했다. 카라마츠는 어느 순간부터 토라를 꼭 끌어안고 잠들기 시작했다. 토라도 퍽이나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따뜻하고 보드라운 배에 손을 올리고 토닥거리면 갸릉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같은 처지라는 동질감 또한 그들의 유대를 한층 더 쌓아올렸다. 카라마츠는 더욱 열악해진 환경에서도 지금이 더 낫다고 여겼다. 비록 장시간 굶어 근육과 살이 탄력을 잃고, 귀와 꼬리에 남아 있는 털들에게는 윤기가 흐르지 않고, 토라에게 계속 젖을 먹여 유선이 마르는 게 느껴졌음에도 그랬다. 걱정스러운 울음소리가 들려오면 괜찮다고 대답했다. 진심이었다. 그는 정말 괜찮았다.

 

 

 

성공은 언제나 괜찮아야만 했다. 

 

 

"갸오오."

 

 

 

그러나 다시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더 이상 성공이 아니게 된 카라마츠는 아주 자그마한 소리로, 토라의 작은 귀로도 들어갈 수 있을 만큼의 아주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사실은 괜찮지 않았다. 그럴 리가 없었다.

 

 

 

그가 처음으로 털어놓는 본심은 초라하고 비참했다. 카라마츠는 경황도 없이 헛구역질을 계속했다. 습기로 눈가가 푹 젖어들었다. 토해내기가 고통스러워 눈물을 뚝뚝 흘렸다. 감정의 타래는 텅 빈 속에서 눈물과 함께 반죽되어, 눅눅한 냄새를 풍겼다. 잔뜩 엉망진창으로 얽혀 있어 절대 풀리지도 않을 것 같았다. 연약한 모래성이 무너지듯, 탯줄이 끊어지듯 위태롭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곳에서 나가고 싶다. 밖을 보고 싶어. 태양은 따스한지. 풀에서는 정말 달콤한 냄새가 나는지."

 

 

 

서럽게 우는 소리는 갓난아기의 그것과도 같다. 아기가 젖을, 어미를 갈구하듯이 그는 바깥을 갈망했다. 카라마츠는 그 욕구를 어떻게 해소해야 할지 끝내 알 수 없어, 뭉툭한 손톱으로 바닥을 긁어냈다. 볼품없이 마른 팔다리를 버둥거렸다.

 

 

"살고, 싶어."

 

 

 

노도와도 같은 비통함에 휩쓸려만 가는데. 지지대 하나 가진 게 없었다.

 

 

 

 

슬픔의 파편들이 카라마츠의 목구멍 안에 남아 그를 혹사시키고 있었다. 입을 아무리 크게 벌려도 달각이는 소리를 낼 뿐이지 나오지는 않았다. 숨을, 쉴 수가 없다. 그러나 토라가 덜덜 경련하는 카라마츠의 손등 위에 이마를 부비자, 그것들은 거짓말처럼 녹아 사라지기 시작했다. 카라마츠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물었다. 부질 없다는 걸 알면서도.

 

 

 

"살아갈 수 있을까."

 

 

 

처참하게 쉰 목소리였다. 금방이라도 스러질 듯이 연약했다. 마른 기침이 호흡 사이사이에 섞여들었다. 카라마츠는 죽음의 끝에서 돌아온 이처럼 헐떡였다. 혼자였다면 이미 무너졌을 것이다. 

 

 

"내가 살아가도 될까."

 

 

대답을 듣고 나서도, 울음이 그치기까지는 아주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

 

 

토라의 털에 가만히 코를 묻으면, 카라마츠는 항상 무어라 형용하기 힘든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안정감이 혈관을 타고 깊숙이 퍼졌다. 잠이 쏟아졌으나, 예전 긴 관에서 맞았던 졸음과는 판이하게 차이가 있었다. 뒤척이던 예전과는 달리 기분 좋은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나마 그는 자유로웠다.

 

 

 

토라의 털에서는 예민한 후각에도 거슬리지 않는 냄새가 났다. 그가 맡아본 어떤 약품의 냄새와도 달랐다. 아세톤, 포르말린. 카라마츠가 알고 있는 단어가 적기는 했지만, 어떤 말로도 그것을 표현하기는 힘들 것 같았다. 그리고 그의 직감은 대체로 잘 맞는 편이었다. 카라마츠는 자신이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를 그 냄새에 붙이기로 했다.

 

 

"햇살 냄새가 난다. 토라."

 

 

 

해는 온 세상을 다 비출 수 있을 정도로 밝다고 한다. 매우 뜨겁지만, 자상하지. 으응, 말이 너무 어려웠나? 칭찬이라는 말을 덧붙이며, 카라마츠는 희미한 미소를 띠었다. 만약 상상했던 것보다 좋은 게 아니라면 다른 느낌을 찾아보도록 하자. 우리 함께.

 

 

 

.눈꺼풀을 느리게 깜박였다. 그것은 언제의 기억인가.

 

 

 

잠이 늘었다. 무거운 물체가 전신을 짓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에너지의 손실을 최대한 막기 위해, 눈을 감은 시간이 일어나 있는 시간보다 길어졌다. 대부분의 지방이 사라져, 드러난 뼈가 바닥에 맞닿아 욱신거린다. 그것은 토라의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살이 움푹 가라앉고 늘어진 거죽 안으로는 뼈가 만져졌다. 카라마츠는 긴 잠에서 깨어나면 고개를 숙여 그 연약한 호흡에 신경을 집중하곤 했다.

 

 

 

희망은 우화하기 직전에 한계에 다다랐다. 고치를 깰 힘이 부족했다. 온 힘을 다해 닻을 지탱하고 있는데, 미풍은 여전히 불지 않았다. 바닥을 박차오르기도 전에 숨이 찼다. 목표까지의 거리는 여전히 까마득한데. 죽음이 손을 흔들었다. 발을 묶은 사슬 따위는 아무래도 좋으니 편해지고 싶었다. 그러나 카라마츠는 하루에 몇 번이고 같은 문장을 반복했다. 나가고 싶어. 살아가고 싶어.

 

.

 

 

 

 

마침내 두터운 철문이 열렸다. 카라마츠는 동공이 수축하는 걸 느꼈다. 연구원들의 두런거림은 들려오지 않았다. 물기 어린 마찰음 또한 없었다. 엉망으로 뒤섞인 기억 사이로, 빛이 한 줄기 새어들어왔다. 카라마츠는 마른 입술을 간신히 달싹였다.

 

 

"아버지."

 

 

.

 

 

 

그는 알 수 없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단순히 빛을 등지고 섰기 때문은 아니었다. 긴. 아주 긴 침묵이 흘렀다. 카라마츠는 그 시간 동안 박사의 얼굴에서 '복잡함' 한 가지 감정만을 읽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카라마츠의 어떤 질문에도 답이 되어주지 못했다.

 

 

하기야, 카라마츠는 많은 부분에서 무지했다. 갓 태어난 신생아와 다름이 없었다. 태양이란 무엇인지. 나무란, 풀이란, 바다란 무엇인지. 이미 오래 전에 답을 얻었어야 했던 질문들. 반짝이는 플라스크 사이에서, 박사의 말이 끝나자마자 던지고 싶었던 말들. 당신의 눈에 깃든 두려움은 무엇인지.

 

 

 

왜 자신은 버려져야만 하는지. 이미 직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불을 삼킨 것처럼 목이 뜨거웠다. 비명이 속을 진창 휘저으며 타오르기 시작했다. 녹아내렸던 파편들이 그를 마주하자 다시 피부를 찢고 솟아올랐다. 카라마츠는 분노를 느꼈다. 박사의 '복잡함'과는 다르게, 카라마츠의 '복잡함'은 분노였다. 그간 갈피를 잡지 못했던 감정이 방향성을 얻었다. 카라마츠는 당장이라도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아버지. 나의 아버지. 잔인한 창조주의 숨통을 틀어쥐면 이 분노가 풀릴 것만 같았다.

 

 

 

"차라리, 희망이라도 주지 않으셨다면."

 

"...미안하다."

 

 

 

그러나 무겁게 박사의 입이 떼어지고, 모든 비난은 그 절대적인 한마디 앞에서 의미를 잃었다.

 

 

 

아직도 자신의 몸에 그렇게 수분이 남아 있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였다. 그 말을 듣자마자 카라마츠의 목구멍에서는 짐승 같은 소리가 났다. 울음 보다는 신음에, 신음 보다는 비명에 가까운. 하늘이 무너지고 있었다. 코가 시큰거리고 귀에서는 이명이 울렸다. 가슴이 조여왔다. 정상적이라면 붙어있을 리 없는 기괴한 살덩이를, 카라마츠는 퍽퍽 두드렸다.

 

 

그는 아기가 첫울음을 터트리는 것처럼 오열했다. 그 또한 모든 게 두려웠다. 좁고 갑갑한 실험실은, 카라마츠의 유일한 세상이자 요람이었다. 그들 모두에게 마찬가지였다. 도망쳐 만들어낸 낙원. 처음에 그것은 수단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일부에게는 목적이 되어갔다. 그들에게 카라마츠는 성공이 아니었다. 온건한 공간을 깨부수는 크나큰 균열이었다.

 

 

박사는 두려웠던 것이다. 완벽에 가까운 인간을 만들어낸 것이. 지나치게 뛰어난 생명체는 어느덧 애증의 존재가 되어갔다. 성공에 흥분한 연구원들은 요람울 벗어나 세상을 갈망했다. 때문에 그는 역작을 없애버리고 모든 걸 무로 돌리고자 했다. 카라마츠는 박사의 눈동자에서 그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 기억하고 있다. 첫 숨을 내뱉던 순간을, 마주쳤던 경이와 두려움을.

 

 

 

"당신의 손에서 탄생한 나는 괴물이라고 불리겠죠. 바깥으로 나서면 괴롭고, 여기서 마주하는 끝이 더 편할지도 모르겠지만."

 

 

 

누구도 박사를 탓할 수는 없었다. 그는 스스로의 안식을 택했을 뿐이었다.

 

"아버지. 저는 살아가고 싶습니다."

 

 

 

카라마츠는 박사의 눈가에서 흐르는 한 줄기의 눈물을 보았다.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카라마츠는 문을 지탱하고 있던 마른 손이 사라지는 궤적을 아주 오랫동안 보았다. 끊어지는 소리를 내며 철문은 닫혔다. 카라마츠는 아주 기이하고 섬세한 청각기관으로 그것에서 다른 소리를 들어낼 수 있었다. 그의 발목을 묶고 있던 사슬이 끊어지는 소리였다.

 

 

 

카라마츠는 조심스럽게 토라를 안아들었다. 조금 비틀거렸지만, 두 다리로 곧게 섰다. 완벽한 자세는 아니었다. 첫 걸음마를 시작하는 아기처럼 불안했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정도면 충분했다. 위태로운 걸음으로도 철문을 열 수 있었다.

 

 

애초에 그것은 처음부터 잠겨 있지 않았다.

 

 

 

 

*

 

 

 

카라마츠의 발걸음은 점점 빨라지다, 이내 뜀박질이 되었다. 매끄러운 복도에 발톱이 부딪혀 경쾌한 소리가 났다. 잠에서 깨어난 토라가 희미하게 울었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 배는 훌쩍 커진 몸이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짤막한 꼬리가 맹렬하게 흔들렸다. 카라마츠는 아마 자신의 것도 그러리라고 생각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눈앞이 핑핑 돌았다. 그러나 전에 없던 자유로움이 전신을 감쌌다. 그들의 요람은 아주 작은 곳이었다. 한달음에 달려 벗어날 수 있었다. 거대하게만 느껴졌던 세계는 언제부터인지 갑갑한 철창이 되어 그들을 가두었다. 우화가 진즉에 가까워져 있었으나, 두려움 때문에 너무나도 많은 시간을 고치 속에서 허비했다.

 

 

 

 

카라마츠는 전신이 팽팽하게 부푸는 걸 느꼈다. 등 뒤에서 선풍이 불어왔다. 날아오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시멘트 바닥 대신에 흙을 밟고, 높은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것이었다. 문득, 인간의 것과 다른 귀들이 강렬한 파공음을 감지해내고 쫑긋였다. 비행을 목전에 두고 카라마츠와 토라는 시선을 마주했다.

 

 

 

그것은 사지를 옥죄던 고치가 깨지는 소리였다. 처음으로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음에 감사했다. 이윽고, 두 쌍의 눈동자가 경이로 젖어들었다.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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